“그동안 문인들의 왕성한 창작활동과 사고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기업문화재단은 많지만 재단 고유의 공익활동을 수행하며 일반의 사랑을 받는 곳은 드물다. 설립자의 자기만족이나 남에게 보여주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대산문화재단은 한국문학과 문인들의 후견인 노릇을 넉넉히 감당해왔다는 점에서 기업문화활동의 정석을 보여준다.
신창재 대산문화재단이사장(교보생명 회장)은 “대산문화재단은 대산문학재단이었다”며, 그 자신은 문인도 문화전문가도 아니고 다만 공익재단 운영전문가로서 충실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대산문화재단은 신 회장의 선친인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가 1992년 12월 설립, 대산문학상을 비롯해 대산청소년문학상, 서울국제문학포럼, 동아시아문학포럼 등 한국문학의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데 기여해왔다. 단순한 문학상 지원에 그치지 않고 문학계에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며 동력을 제공해온 점도 남다르다.
지난 20년간 사업비는 총 303억여원.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대산문학상은 총 42억4000만원이 지원돼 고은, 황석영, 박완서, 이청준 등 105명의 수상자를 냈다. 신 이사장은 선친이 재단을 출범시키고 난 이듬해 2대 이사장으로 취임, 경영을 맡아왔다.
그가 취임 후 처음 맞닥뜨린 문제는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를 내는 일이었다. 93년 첫 수상자로 고은 시인, 소설가 이승우, 평론가 백낙청 교수가 뽑히자, 모처에서 “대기업이 큰 돈 들여 한다는 게 이거냐”며, 전화가 걸려왔다. 이때 신 이사장이 결단을 내렸다. 심사위원들이 작품이 좋다고 뽑았으니 정치적 배경에 신경쓸 것 없다 했다. 특정문단에 좌우되지 않고 원칙을 지켜오고 있는 점은 대산문화재단의 힘이다.
신 이사장의 원칙론은 교보생명을 경영하는데도 그대로 통한다. 파벌을 인정하지 않고 좌든 우든 프로젝트만 좋으면 받아들인다. 이는 그의 철저한 사람중심 경영과 관련이 있다.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로 96년까지 재직한 그는 그만둘 때까지 출생아를 받아냈다. 그가 17년간 받아낸 아기만 약 1000여명. 수십억분의 1의 확률로 태어나는 사람에 대한 귀한 마음이 그의 경영기저를 이룬다.
신 이사장은 향후 대산문화재단의 화두로 디지털과 청소년을 꼽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디지털 세상이지만 그렇다해도 그는 재단의 역할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문학, 책으로 배움의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이는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의 존재 이유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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