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쎈돌’은 역시 ‘쎈돌’이었다. 자유분방했고,비호같이 움직였다. 포석은 망쳤다. 실망하지 않았다. 중반 이후를 노렸다. 먹이의 허점을 공략했다. 한점 한점으로 상대방 안방을 파고들더니 어느새 팽팽한 균형을 맞췄다. 마지막 착점 후 뚜껑을 여니 ‘반집승’. 그것도 두번이나.
한국 바둑랭킹 1위 이세돌 9단이 ‘대륙의 자존심’ 중국 구리 9단을 2:1(3번기)로 꺾고 세계 최대 바둑기전 중 하나인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했다. 2004년과 2007~2008년 우승에 이어 네번째다. 삼성화재배를 네번 품에 안은 것은 이 9단이 처음으로, 바둑사(史)에 새 획을 긋는 대기록이다. 이창호 9단이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연패를 한 것이 그동안 최고 기록이었다.
‘한국기사 킬러’로 총 전적에서 열세인 구리 9단을 쓰러뜨린 이 9단 개인의 영광(우승상금 3억원)이기도 하지만, 한국 바둑계의 위상을 새삼 떨친 쾌거다. 바둑팬은 물론, 글로벌경기 침체로 신나는 일이 제대로 없는 우리 국민에게도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이 9단은 완전한 부활을 알렸다. 상반기 성적이 좋지 않다가 하반기에 선전, 지난달 박정환 9단으로부터 국내랭킹 1위를 탈환하기는 했지만, 예전만큼의 위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이번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단박에 불식시켰다. 호방하면서도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적 수(手)를 즐겨 쓰는 그의 기풍에 푹빠져 있는 바둑 마니아로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주목되는 것은 이 9단이 많이 성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83년생 동갑내기이자, ‘포석의 정석’으로 까탈스런 라이벌인 구리를 꺾고도 들뜨지 않았다. 그는 우승 인터뷰에서 “(이길 수 없는 바둑을 이겨)운이 좋았다. 구리 9단과 둘 수 있어 기뻤고 다시 이런 자리에서 만나고 싶다”며 상대방을 배려했다.
한때 한국바둑리그 불참으로 ‘이세돌 파동’을 일으켰고, 이후 자숙하겠다고 한 약속이 겸손한 멘트에서 묻어나온다. 천재적인 감각과 자유로운 기풍으로 이창호 9단 이후 1인자로 군림했지만 왠지 말썽쟁이 느낌이 들었던 이세돌. 그래서 바둑팬이 더 좋아했을지 모를 이세돌. 그의 인간적 성숙은 향후 명품의 반상(盤上) 대국을 예고한다.
특유의 기(氣)는 여전히 넘친다. 자신감을 굳이 숨긴다면 ‘쎈돌’이 아니니까. 이 9단은 팬서비스를 마다하지 않았다. “앞으로 세계대회에서 20승 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게 이세돌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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