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환차익보다 원자재 수입 더 큰 손해
정치 불확실성까지 겹쳐 경영계획 못세워
돈줄 마른 중기·스타트업 정부 지원 절실
“수출 대금의 환차익보다 원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손해가 훨씬 큽니다. 가장 큰 문제는, 도대체 어디까지 오를지 예상할 수가 없다는 거죠.”
수도권에 있는 A중소기업 대표는 한숨만 내쉬었다. 그는 아직 올해 경영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유례없는 환율 압박 하나만 해도 힘겨운데, 경기 악화,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쳤다.
고환율을 감내하고 계약 물량을 얼마나 세워야 할지, 수입 원자잿값 상승을 제품가에 어떻게 반영할지, 그리고 이런 고민 끝에 만들면 과연 팔리긴 할지. 모든 게 불확실하다. 그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푸른 뱀의 해, 을사년(乙巳年)은 본디 지혜와 행운의 상징이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을사년은 을사늑약을 비롯, ‘을씨년스럽다’의 어원이 될 만큼 처절한 고통을 수반했다. 올해, 을사년은 최소한 중소기업에는 유례없이 혹독한, ‘을씨년스러운’ 한 해가 예고된다.
▶고환율 직격탄…환 헤지는 어림도 없는 中企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은 태생적으로 환율에 취약하다. 환율 변동성에 대비하는 환 헤지(위험회피)는 필수다. 문제는 최근과 같은 비상식적 고환율엔 대기업마저 휘청거리는데, 중소기업 상당수는 아예 환 헤지 자체를 엄두도 못 내는 데에 있다.
특히, 대부분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제조업 분야의 중소기업은 당장 생사기로에 달했다. B 기업 대표는 “원가가 조금만 올라도 당장 바이어들은 계약을 취소한다”며 “최근 들어 환율 변수 하나 때문에 원자재 수입 가격이 5% 이상 올랐고, 어디까지 오를지 알 수가 없다. 환율이 떨어지길 기도만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경북 칠곡에 있는 C 제조업체 대표는 “기존 진행 중인 계약 건이 있는데, 환율이 오르니까 상대 업체 쪽에서 단가를 계속 낮추려 하거나, 계약을 지연·보류시키려고 한다”고 전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수출 중소기업 513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고환율로 피해를 봤다는 응답은 57.9%에 달했다. 영세한 중소기업일수록 더 부담이 컸다. 매출액과 수출액이 10억원 미만인 기업은 각각 62.2%, 63.5%가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돈줄도 말랐다…투자 허덕이는 스타트업=고금리에 경기 불황으로 스타트업은 ‘투자 혹한기’에 시달리고 있다. 스타트업계는 민간 투자 외에 정부 지원과 투자에도 목마르지만, 최근 탄핵 정국 여파로 올해 정부 지원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오픈서베이가 최근 발표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4‘에 따르면, 창업자와 투자자 10명 중 6명은 투자 시장이 전년 대비 위축됐다고 평가했다. 해당 조사는 창업자 250명, 투자자 200명, 대기업 재직자 200명, 스타트업 재직자 200명, 취업준비생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창업자의 63%, 투자자의 64%는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작년보다 더 위축됐다고 평가했다. 창업자 40%가량이 투자 유치가 어려웠다고 답했고, 투자자 50% 이상이 투자 집행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투자의 수요·공급에서 모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탄핵 국면으로 스타트업 생태계가 겪는 어려움은 더 가중될 전망이다. 당장 올해 예산안을 비롯, 정국이 대혼란에 빠지면서 정부 지원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불투명하다.
창업자 중 절반(49.6%)가량이 벤처투자 시장 혹한기를 극복할 방안으로 정부 지원 사업 추진을 꼽았다. 투자도 위축되고 자금 여력도 없는 상태에서 정부 지원 사업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역으로, 정책자금 집행에 차질이 생기면 고스란히 경영 타격으로 이어진다.
▶26.5조 정책금융 공급…정부도 대응 나섰다=당장 시급한 건 뿌리산업, 중소·스타트업의 생존이다. 정부가 올해 26.5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공급하기로 한 배경이다.
주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해당 공급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으로 초점을 맞췄다. 세부적으론, 소상공인 정책자금 3.77조원과 중소기업 정책자금 4.53조원 등 정책자금 8.3조원이 공급된다. 또, 지역신용보증재단 신규 보증 12.2조원, 기술보증기금 신규 보증 6조원 등 보증 18.2조원도 공급할 예정이다.
해외법인을 설립·운영하려는 국내 중소기업은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통해 올 3월 중 최초 지원을 개시할 예정이며, 화장품 분야 등 대기업으로부터 제품을 납품받는 중소기업에 생산자금을 지원하는 방식도 신설할 계획이다.
다만, 이 같은 계획과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예산안을 비롯, 정부 운영 정상화가 선행돼야 한다. 현재 정부 부처 장관들이 일괄 사의를 표명한 이후 사실상 관가는 파행 운영을 거듭하고 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환율상승에 최저임금 인상, 인력난에 정부 지원까지 불안해지니 2025년 걱정에 잠을 못 잘 지경”이라며 “하루빨리 정치 상황이 안정되고 불확실성이 해결돼야 한다”고 토로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국가 신뢰도 및 이미지 하락과 환율 급등으로 인한 여파로, 수출 중소기업들이 힘든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대외신인도 회복과 환율 안정이 중요하다. 급격한 경제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국회, 정부, 중소기업계가 한마음으로 협력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상수 기자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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