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도입에 최대 변수로 부상

[헤럴드경제=황혜진 기자] 홍보파트에서 1년 넘게 근무해온 은행원 A씨의 가장 큰 목표는 올해 말 인사에서 홍보실을 나가는 것이다. 홍보 업무가 싫은 건 아니지만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제대로 성과를 평가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A씨는 “대출, 외환 쪽 경험이 많을 뿐만 아니라 홍보파트는 후선업무로 힘만 들고 제대로 된 실적평가를 받기 힘든 업무”라며 “연봉이 40%까지 차이가 나는데 누가 성과 안나오는 부서에 있으려고 하겠냐”고 반문했다.

금융공기업에 이어 민간은행에도 연내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해 은행연합회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여러 허점을 드러내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성과에 따라 연봉을 최대 40%까지 차등화하겠다 성과연봉제에 정작 성과가 될 실적에 대한 정의가 빠져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는 것.

이로 인해 ‘건수 채우기’ 일변도의 성과측정으로 특정 지점ㆍ업무 쏠림, 불완전판매 등 부작용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성과연봉제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성과에 대한 개념정리와 다양한 평가방법 마련이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적 좋은 지점ㆍ업무 선호 뚜렷= 이번 가이드라인대로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실적을 올리기에 용이한 지점과 업무를 중심으로 직원들의 쏠림 현상이 뚜렷해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유동 인구가 많아 상대적으로 ‘잡무’만 많은 지점보다 대출 등 알짜 고객이 많은 신도시나 기관 지점 등을 놓고 치열한 근무경쟁이 벌어질 것이란 얘기다.

수수료 수입이 짭짤한 외환금융센터도 인기가 높아질 것으로 점쳐진다.

은행원 B씨는 “최근 은행장들이 높은 실적을 낸 직원들을 깜짝 승진시켰지만 대부분 대출이나 외환 등 숫자로 실적이 잡히는 부서 근무자였다”며 “인사철만 되면 대출과 외환 관련 업무를 맡기 위한 로비가 치열해질 것”이라고 염려했다.

▶입출금ㆍ 공과금 처리 업무는 기피= 은행 지점은 하나의 조직으로 팀워크가 중요하다. 지점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해서는 대출과 외환 담당자 뿐만 아니라 입출금이나 공과금 수납, 민원처리 담당자도 반드시 필요하다. 각종 서류 등을 수발하는 직원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건수 중심으로 실적을 매길 경우 측정이 어려운 업무를 맡은 직원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고객영업이 끝난 뒤 셧터를 내리고 시작되는 시재ㆍ장표 정리업무 등도 업무지만 실적으로 반영되기 어렵다는 불만도 나온다. 은행원 C씨는 “오후 4시 이후부터 오후 9~10시까지 정리업무를 한다”면서 “6시간 넘도록 하는 업무임에도 이건 왜 성과일 수 없냐”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그동안 후배들에게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조직에서 인정받는다’고 얘기해 줬는데 이제 누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냐”며 “앞으로 누구든 손해 보는 업무는 맡지 않으려고 할 텐데,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불완전판매 우려도= 줄세우기 식 실적압박이 커지면서 불완전판매 우려도 나온다. 은행원 D씨는 신상품이 나올때마다 무섭다고 했다. 최근 계좌이동제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출시로 할당된 건수를 채우기 위해 온갖 인맥을 동원한 그였다. 요즘엔 여기에 더해 ’통합 멤버십 서비스‘ 앱 다운 할당까지 채우고 있다.

그는 “상품에 대한 설명보다 ‘한번만 도와달라’는 식으로 애걸복걸하면서 할당량을 채우고 있다”면서 “실적으로 연봉을 매기면 ’우선 건수부터 채우고 보자’는 직원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과’ 정의부터 합의해야= 전문가들은 성과연봉제 도입에 앞서 성과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업무가 있는 만큼 이에 따른 공평한 ‘룰’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동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성과연봉제가 성과를 내려면 직원간 차등을 만드는 과정이 직원들에게 납득 가능해야 한다”며 “평가지표를 객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노동자들과 먼저 논의해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역시“성과연봉제에 대한 노조의 우려는 성과를 평가하는 방법을 공정하게 만들면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평가방법 마련에 노동조합을 참여시킨다든지 공정한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각 은행마다 성과연봉제 도입 방안을 마련하겠지만 원칙적으로 ‘성과’에 대한 공통적인 잣대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