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김현경 기자] 출산 후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 산후우울증. 의학적으로는 출산 후 4주 전후에 각종 우울증상을 경험하며 일상생활에서 기능 저하를 초래하는 질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산후(産後)우울증’이라는 말 그대로 출산 후에 겪게 되는 모든 우울증상을 포괄해서 생각한다면, 저는 출산 후 2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
출산 전 저는 발랄하기까진 않아도 꽤 긍정적인 성격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루하루가 익사이팅했습니다. 꿈이 많아서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기 전에 죽으면 억울하겠다는 주의로 오늘을 사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출산은 제 생각과 세계관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습니다. ‘김현경’이라는 이름과 제 자신의 삶은 지워지고 아이와 가족이 저의 몸과 마음을 지배했습니다.
‘나’라는 인간으로 살아온 시간은 29년이고 ‘누구의 엄마’로 산 시간은 고작 20개월이지만 이전의 삶은 까마득한 옛날처럼 가물가물해질 정도로 출산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친구도 못 만나고, 외출도 마음대로 못하고, 좋아하는 커피도 못 마시고, 책도 못 보고…. 자유가 없어지니 우울함이 들이닥쳤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딘가? 나는 계속 이렇게 사는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습니다.
몸과 마음은 함께 간다는 말도 맞았습니다. 몸이 변해가니 마음도 힘들어졌습니다.
출산 전에도 절세미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출산 후 늘어진 배와 굵어진 팔다리, 기미 가득한 얼굴을 볼 때면 한숨만 나왔습니다.
외모는 둘째치고 고된 육아로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는 종합병원이 되니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이와 남편은 나의 노고를 알기나 할까’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더 우울한 건, 우울함을 차분히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도 없이 기저귀 갈고 밥 하느라 정신 없이 보내다가 불쑥 우울함이 튀어나오면 주체하기 힘들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젖먹이면서 울고, 혼자 화장실에서 울고, 남편이랑 싸우다가 울고.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직장에 복귀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도 조금 자라면서 정도는 덜해졌지만 지금도 문득문득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우울감은 평생 함께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다만 예전에는 답답하기만 한 우울증의 상태였다면, 지금은 아이의 웃음을 보면서 나도 한번 웃고 기뻤다가 슬펐다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조울증의 상태가 된 것에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출산 후 85% 이상의 여성이 우울감을 느낄 정도로 산후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간혹 다른 여자들도 다 그렇게 산다, 엄마인데 희생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그런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고이 접어 넣어두시길 바랍니다.
산후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족, 특히 남편의 도움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존감이 떨어진 아내에게 무조건 예쁘다, 사랑한다고 해주셔야 합니다. 남편도 힘들겠지만 아내를 감싸줄 사람은 남편밖에 없습니다. 아내를 잘 다독여주고 육아와 가사를 적극적으로 분담해주셔야 합니다.
수다도 큰 힘이 됩니다. 친구든 형제든 누구에게든 감정을 털어놓으면 답답함이 조금이라도 사라집니다.
마음이 건강해도 육아는 힘듭니다. 하물며 마음까지 아프면 육아는 너무 힘들어집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엄마가 될 때까지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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