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이 오늘로 두 달을 맞았다. 그사이 해가 바뀌었으니, 무려 2년 차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과 무안 제주항공 참사, 두차례 대통령 체포를 둘러싼 극한의 갈등, 그리고 초유의 현직 대통령 구속과 법원 난동, 검찰 기소까지 그야말로 역대급 사건의 연속이었다.
하나하나가 훗날 교과서에 실릴 만한 역사적 사건을 겪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갔다. 만약 내가 기자가 아닌 일선 공무원의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면 과연 어떤 마음으로 출근길에 오르고 있었을까. 슬프게도 답은 어렵지 않았다. 혹자는 비겁하다 평할 수 있겠지만, 아마 일상적인 업무 외에는 관심을 두기 힘들었을 것 같다. 초유의 국정 리더십 공백 사태에 의욕적으로 새로운 업무를 추진할 여건도 안 되거니와, 굳이 책임질 일을 만들 이유가 없어서다. 탄핵정국의 불확실성이 사라질 때까지 일상적인 행정이 중단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공직의 무게를 수행 중이라 자위할 것 같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현 모습도 냉정히 말해 이와 다르다고 할 수 없다. 그의 잘못이 아니다. 대행의 대행이라는 전대미문의 역할을 수행 중인 그다. 외교와 국방, 그리고 기재부 수장이라는 1인 3역의 역할로 불철주야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 대행의 존재감은 거부권 행사 시점에서만 드러난다.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목소리는 수면에 잠겨 있다. 탄핵 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가 더 크게 주목받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서울구치소에서 대통령실 참모들을 접견한 자리에서는 “대통령실이 국정의 중심”이라 전했다고 한다. 원론적으로 대통령실의 현 소임은 직무 정지된 윤 대통령이 아니라 최 대행의 보좌에 있다. 이처럼 대행이라는 한계가 분명한데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의 목소리마저 한층 커지니 행정부 최고 수장 대행 리더십의 한계는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래서 난 공직사회의 이런 상황을 ‘비자발적 복지부동’으로 부르려 한다. 통상 ‘복지부동’은 공직 사회의 무사안일주의를 비판하는 단어로 쓰이지만, 작금의 상황은 결코 공직자들이 스스로 초래한 게 아니기에 ‘비자발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현상 유지마저도 버거운 이때, 글로벌 정세는 급변한다. 우려하던 트럼프 대통령 발(發) 관세 전쟁은 서막이 올랐다. 아직 우리나라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는데, 전날 주가는 급락했고, 환율은 급등했다. 외교력이 실종된 상태에서 기업들은 부모 잃은 아이 신세다. 초비상이다. 더 서글픈 것은 지금 당장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점이다.
얼마 전 올해 공무원에 막 임용된 20대 새내기들의 인터뷰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개인화된 세태 속에서도 그들은 공무원을 택한 이유로 안정된 직업 때문만은 아녔다고 했다. 그들은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음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대한민국 공직자들 모두가 이런 초심으로 공직에 들어왔고 또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루하루 연명하는 대한민국을 괴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그들에게 이제 공직의 무게와 열정을 돌려줘야 할 때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들에 지워질 게 분명하다.
정순식 사회부장 겸 전국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