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만들어진 슬로건이 있었다. 다이내믹 코리아.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이 단어는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도 여전히 회자되는 단어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이로운 초고속 압축성장, 군부독재를 무너뜨린 국민의 행동력, 전 세계를 강타한 K-컬처의 힘까지. 다이내믹 코리아는 그렇게 여전히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오늘도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역동성의 기저에는 기세를 타면 거칠게 질주하는 우리나라 국민의 기질이 자리 잡고 있다.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신바람 국민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자면 이 긍정적인 기운 대신 ‘혐오’ ‘분노’ ‘극단적 각자도생’의 부정적인 역동성이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남편이 화가 많이 났어요.’라는 ‘참교육’ 드라마의 유행 대사에서 ‘남편’의 자리를 ‘국민’으로 바꿔 봤다. 전혀 어색함이 없다.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월드컵 ‘광탈(광속탈락)’ 이후 홍명보 감독과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대중의 분노는 가히 정점을 예단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다. 홍 감독을 향해서는 가족 살해 위협까지 나왔다. 이해할 수 없는 경기 운영에 이 분노의 정서에 나또한 공감하는 바다. 하지만 그 수위에 대해선 여러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른바 갈라치기로 대립과 반목의 시선으로 양극단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정서는 날이 갈수록 더욱 거세진다. 배재고의 스타벅스 응원 논란은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고 교육하는 상식적인 접근을 벗어나 급기야 어른들의 진영 싸움으로 번졌다. 한 아이돌 가수의 사투리를 두고는 전직 대통령을 비하하는 ‘일베 논란’이 난데없이 제기됐고, 한술 더 떠 정치권까지 공방을 벌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투명한 대한민국의 미래에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획일화된 생존 본능의 발현 또한 부정적인 역동성의 한 단면이다. AI 혁명으로 줄어들게 될 일자리, 낮은 출산율과 노년층의 급증, 나날이 심해지는 이상 기후 등으로 모두가 불안한 미래를 걱정한다. 이제 꺾일 일만 남았다는 ‘피크아웃 코리아’의 불안감은 아이의 적성을 따지지 않는 맹목적인 의대 광풍을 낳았다. 더불어 최근의 극단적인 투자 쏠림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다. 반도체 업황의 기록적인 호황에 올라탄 ‘삼전닉스’ 투자 열풍은 급기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투자 상품의 출시를 낳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과 거래 규모 비중이 주식시장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블랙홀처럼 투자자들의 자금을 빨아들인 이 상품은 최근 극심한 증시 변동성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급기야 금융당국 수장은 “어떻게든 그때 드러누워서 막았어야 했나 개인적으로 반성하고 있다. 후회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명한 주장과 구호,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이 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전형적인 ‘불안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 접지 않았으면 한다. 여전히 주변에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도 이런 사회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다수의 샤이한 그들이 있기에. 그래서 2002년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2026년 ‘불안 코리아’를 거쳐, 훗날 ‘해피코리아’를 기대해 보려 한다.
정순식 사회부장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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