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나란히 배치된 두 장면. 하나는 세계 최초의 핵추진 유도미사일 호위함을 소개하는 미국 해군 제7함대의 아카이브 기록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베트남 광찌 해안 지역에 떨어진 불발탄(UXO) 해체 모습이다.
그렇게 베트남 전쟁의 과거와 현재가 공간을 넘나들며 맞물린다. 한쪽에서는 군사력이 기술적 진보와 위용의 상징으로 과시되고, 다른 한쪽에는 생을 앗아가는 폭격에서 우연히 터지지 않은 포탄을 수거해 적게나마 돈을 버는 베트남의 마을 사람들이 살아간다. 작가 투안 앤드류 응우옌의 9분가량의 영상 작품 ‘대포 소리, 슬픔 후렴과 같이 익숙한’(2021)은 전쟁의 흔적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여전히 누군가의 오늘임을 이처럼 선명하게 드러낸다. 서울대미술관이 진행하는 전시 ‘무기세(Weaponocene)’의 기획 출발점이 된 작품이다.
무기로 현시대를 바라보는 최근 국내에서 보기 드문 시선의 그룹전이 오는 5월 4일까지 열린다. 전시명인 무기세는 무기 생산과 기술, 방위산업, 전쟁 등 군사활동과 이를 둘러싼 복잡한 군산복합체가 지구 환경을 비롯한 인류의 미래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을 다루는 개념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은 “오늘날 예술의 문제는 ‘무기가 자국을 지키고 경쟁자들이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당하고 합리적인 수단’이라는 논리에 대한 무력한 동의로 함축된다”며 “무기를 들지 않을 수 있는 예술의 힘을 말하고자 기획한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된다. 살생을 위한 무기가 매일의 한 장면이 된 ‘무기화된 일상’로 시작해 각종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스펙터클로서의 무기’를 다루고, 무기로 인해 파괴된 땅과 고통받는 생명에 집중하는 ‘낯익은 미래’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회화, 사진, 영상, 설치, 조각을 아우르는 각기 다른 형식의 작품마다 묵직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허보리 작가가 양복과 넥타이로 만든 자주포 K9과 중기관총 M2가 관객을 맞는다. 전투 의지를 상실한 듯 부드러운 솜과 천 재질로 만든 축 처진 탱크와 총이지만, 달리 보면 자기만의 전투를 끝낸 퇴근길 직장인의 애환과 현대인의 삶을 비유하는 것만도 같다.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흰옷 입은 금발 여성이 선글라스를 쓴 채 미군 전투기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권기동 작가의 회화는 마치 영화 ‘탑건’의 포스터를 떠올리게 한다. 한 국가의 군사적 위엄이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소비되는 방식이 낯설지 않아서다. 영화, 광고, 패션 등과 맞물려 군사적 이미지가 미화되거나 로맨틱하게 포장되는 사례를 짚어낸 전략적 연출이다.
스테인리스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실탄을 사격한 최재훈 작가의 작품은 자아와 폭력의 얽힘에 대해 깊은 성찰을 유도하고, 화면을 가득 채운 꽃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이용백 작가의 탱크와 군인 이미지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이데올로기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오제성 작가는 세 명의 어른과 한 어린 아이가 머리에 무언가를 힘겹게 이고 일렬로 걸어가는 조각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연결되는 한국 격동의 근대사를 은유한다.
전쟁과 군사적 이미지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었는 지를 날카롭게 포착하는 작품마다 그 너머에 선 예술의 역할을 되묻고 있는 듯하다. ‘강자의 힘’으로 상징되는 무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예술은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예술은 본질적으로 무기의 대척점에 있는 걸까, 아니면 권력에 의해 언제든 무기화될 수 있는 무기력한 동의로 존재하는 걸까. 무기를 들지 않을 수 있는 힘으로서 예술은 구체적으로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힘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생명을 방어하기 위해서조차 그 힘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사람에 의해 내려진 의지적 결단.” 심 관장은 나치의 처형대 위에서 디트리히 본회퍼가 신에게 전한 이같은 요청이 “무기와 상반되는 예술의 힘이어야 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무료 관람.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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