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경북 북부를 집어삼킨 산불은 오랜 세월을 간직한 문화유산마저 위협했다. 거센 바람을 타고 번진 불길은 천년사찰을 삼켰고, 수백 년을 지켜온 불상과 괘불도 더는 제자리에서 안전할 수 없었다.
국가유산청은 의성 고운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봉황사·선찰사, 영덕 장륙사가 소장한 유물 15건을 긴급 대피시켰다고 26일 밝혔다. 사찰이 품어 온 보물 10건(651점)과 시도유형문화유산 5건(17점)이 화마를 피해 새로운 피난처로 향했다.
고운사의 보물 석조여래좌상은 황급히 안동청소년문화센터로 임시로 옮겨졌다.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운사가 화마에 휩싸여 큰 피해를 입기 직전에 긴급 구출한 것. 시간이 급박해 부처가 앉아 있던 대좌(臺座)는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는 게 국가유산청 측의 설명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석사에 있었던 보물 고려목판과 오불회 괘불탱은 인근에 있는 소수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된장체험단지에는 뜻밖의 손님이 도착했다. 바로 경북도 유형문화유산인 부석사 조사당 목조의상대사좌상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또 다른 사찰인 봉정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목조관음보살좌상과 괘불도, 아미타설법도 등 보물 3건이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로 피신했다. 1622년 당대 최고의 승려들이 조성한 안동 선찰사가 간직한 보물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은 급박하게 옮겨지면서 뜻밖에도 길안초등학교에 머물게 됐다. 영덕 장륙사에서는 건칠관음보살좌상과 영산회상도, 지장시왕도 등 보물 3점이 불길을 피해 영해면사무소로 긴급 이송됐다.
다만 불티가 강풍을 타고 최장 2㎞까지 날아가 번지는 ‘비화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모든 국가유산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물로 지정된 의성 고운사의 연수전과 가운루는 불길에 휩싸여 완전히 전소됐다. 청송의 경북 유형문화유산 만세루도 전날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잿더미로 변했다.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산불이 계속 번지고 있다. 피해 규모를 확인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국가유산 피해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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