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첫 정책 공약으로 ‘인공지능(AI) 기본사회’ 구상을 내놨다. AI 분야에 100조원을 투자하고, 국민 누구나 무료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형 챗GPT’를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GPU(그래픽처리장치) 5만개 확보·NPU(신경망처리장치) 기술 주권 확보, AI 단과대 설립, 병역특례 확대 등 전방위 지원도 약속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AI위원회를 강화해 민관 협력을 총괄하고,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인프라 투자에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AI가 향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기술임은 분명하다. 이 전 대표가 “AI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한 점은 시의적절하다. 특히 초기 인프라가 부족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국민 전체가 AI 기술의 혜택을 누리게 하겠다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최근 미국, 중국 등 AI 패권국 간 기술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와중에 한국도 더 이상 ‘추격자 국가’에 머물 수 없다는 문제의식도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이 공허한 구호로 그치지 않으려면 기술 현실과 산업 생태계의 장애 요인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지금 AI 기업들이 GPU 확보의 어려움이나 자본 부족 못지않게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규제 완화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여전히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활용을 가로막고 있고, 기업들은 실험 하나 하려 해도 각종 절차와 규제에 막혀 한숨만 내쉰다. 기술 발전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는데, 관련 법과 제도는 10년 전 틀에 머물러 있다.
이 전 대표의 공약이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민주당의 입법 기조부터 조율이 필요하다. 반도체용 AI 칩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AI·반도체 산업계가 시급히 요구하는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에는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다. 밤새워 일해도 경쟁에서 버티기 어려운 현실에서 ‘불 끄고 퇴근하라’는 법은 산업계의 절박함과 동떨어져 있다. 전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탈원전 정책으로는 대규모 전력이 기반이 되는 AI의 진흥을 바라기 어렵다. 주요국들이 원전 확대에 나서는 것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AI 열매를 모두가 누리는 ‘AI 기본사회’는 이 전 대표가 꾸준히 공을 들여온 의제다. 관련 토론회도 여러 차례 주도해 왔고, 최근에는 국부펀드를 활용한 ‘K-엔비디아’ 구상을 내놓고 세계적 석학 유발 하라리와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현장에서 당장 작동하는 실질적 지원이다. 100조원을 쏟아붓겠다는 약속도 중요하지만 우선 기업이 숨 쉴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