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견기업의 절반 이상(52.6%)이 이미 정년을 넘긴 근로자를 재고용하고 있고, 상당부분(69.6%)은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를 중심으로 만 65세 정년 연장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산업 현장에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현실에 맞는 대안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중견기업 169개사를 대상으로 한 ‘중견기업 계속 고용 현황’에 따르면, 62.1%는 고령자의 고용 연장방식으로 ‘퇴직 후 재고용’을 선호했다. ‘정년 연장’과 ‘정년 폐지’를 선택한 응답은 각각 33.1%, 4.7%였다. 기업들은 정년을 일률적으로 연장하면 인건비 부담이 늘고(64.5%), 청년 신규 채용 여력도 줄어들 것(59.7%)으로 우려했다. 고용연장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인건비가 기업 경영에 실질적 부담이 된다는 말이다.

정년후 재고용에 나서고 있는 기업의 경우, ‘근로자의 전문성·노하우 활용(84.2%)’을 이유로 꼽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시니어 인력을 활용하는 게 기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규 채용 애로로 인한 인력난 해소(24.7%)’도 이유로 꼽았는데, 대기업도 다르지 않다. 포스코는 정년퇴직자를 100% 재채용하고 있고, 동국제강은 노사 합의로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했다. 현대차는 퇴직 후 최대 2년까지 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숙련 재고용 제도’를, SK하이닉스와 삼성은 정년 없는 기술·전문가 제도를 통해 우수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산업과 직군 특성에 따라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유연하게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년 연장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분야는 주로 숙련 기술직이나 청년층이 기피하는 직군이다. 그나마 청년 고용과 충돌이 적은 분야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년연장을 일률적으로 강제할 경우 청년층이 선호하는 분야에선 직접적 고용 피해가 가게 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고령층 근로자가 1명 늘어날 때 청년 근로자는 최대 1.5명 감소한다. 노동계가 주장하는대로 임금삭감 없이 갈 경우 청년 고용은 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일본은 2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시행해 정년 연장, 정년 폐지, 퇴직 후 재고용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운영하고 있다. 기업의 67.4%가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택하고 임금은 평소의 60%수준이라고 한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최대한 적용 기간을 길게 잡고 기업이 처지에 맞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세제지원과 청년고용 인센티브,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는 필수다. AI(인공지능)혁신기술이 가속화하면서 청년층 고용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년 연장이 엎친 데 덮친 격이 돼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