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열흘째 1450원대를 이어가며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 17일까지 서울외환시장 기준 평균 환율은 1415.5원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보다 높다.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 수준이고,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금융위기때의 15분의1 수준인데도 환율은 고공행진이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지금 고환율의 원인은 국내 경제 주체들이 해외 투자를 크게 늘린 데에 있다. 국민연금은 2016년 100조원 수준이던 해외 운용액을 현재 580조원으로 늘렸고, 개인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2020년 152억달러에서 지난해 1161억달러로 8배 가까이 증가했다.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도 2022년 817억달러, 올해 상반기만 299억달러에 달한다. 해외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내국인의 투자 유출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결과 한국 순대외금융자산은 2014년 127억달러에서 올해 2분기 1조304억달러로 100배 가까이 늘었다.
통상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출 기업에 호재로 통한다. 수출 가격이 낮아져 가격 경쟁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옛말이다. 해외에서 원재료와 중간재를 들여와 재가공 후 수출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원화 약세가 오히려 비용 부담을 늘리고 있다. 원재룟값도 최근 5년간 80% 이상 올라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석탄, 원유, 천연가스 등의 가격 상승은 최종재보다 네 배 이상 높고, 컴퓨터, 비철금속 등 중간재 가격도 39.5% 급등했다. 환율 상승과 원재료 가격 인상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실질실효환율이 10% 하락할 때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0.29%포인트 떨어진다.
소비자물가도 안심할 수 없다. 식품업계는 수입 원재료 의존도가 높아 환율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 미국산 소고기 등 직접 수입품은 물론, 원재료를 수입하는 라면·빵 등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환율이 1%포인트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04%포인트 상승한다고 한다. 고환율이 장기화될수록 서민 부담이 더욱 커진다.
근본적으로는 낮은 성장률과 생산성 둔화가 문제다. 투자 매력이 떨어지면서 자금이 성장과 혁신이 활발한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국내 투자가 부진하면 성장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도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몇 주, 몇 달 만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생산성을 높여 투자 매력을 높이는 장기적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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