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해결 능력을 상실한 정치판의 심판은 국민이다. 운동경기 심판의 호각이나 카드처럼 국민은 선거를 통해서 의사를 표시한다. 그렇다고 사안마다 선거로 결정하는 것은 원시 부족국가 때나 가능한 일이다. 국민을 대신할 심판으로 등장한 것이 사법제도이다. 심판 없는 경기를 상상할 수 없듯이, 법원 없는 민주정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이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국민이 헌법을 통해 국가권력의 한 축인 사법권을 법원에 위임했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 법원은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권한의 행사가 헌법과 법률에 합치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권력에 대한 신뢰는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에 기반한다.
법조인으로 수십 년 살아왔지만, 지난 한 해 가장 예측 불가능한 법원과 검찰의 결정들을 지켜보았다. 이변의 연속이었다. 대법원의 현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 절차 진행은, 대법관들이 소송기록을 읽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될 정도로 이례적으로 빠른 결정이었다. 사법을 정치의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 국론을 갈등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정도만 해도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만한 이변인데,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가 구속취소 결정을 하면서 구속기간을 종전과 달리 ‘일’이 아닌 ‘시간’으로 해석하는 이변의 끝판왕은 사법을 정치의 수렁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동안 일관되게 ‘일’로 계산하던 법원의 결정 때문에 석방되지 못한 많은 피고인과 가족들을 생각하니 황당함과 분노가 치솟았다. 그 결과 국민은 선거를 통해 정부를 바꾸고 사법부의 판단을 심판했다.
문제는 한쪽만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판사도 사람인지라 사법제도는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그래서 그 오류를 시정하고자 3심제를 도입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변론하되 판결에 승복할 수 없으면 상소제도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재판 진행이나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위헌 요소가 있는 법왜곡죄나 내란전담재판부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쪽도 심판으로서는 레드카드를 꺼내고 싶다.
검찰의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 포기와 현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 1심 판결에 대한 항소 포기 역시, 어느 쪽에 레드카드를 줘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모두 정치와 사법이 상호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군림하려다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법원과 검찰의 잘못도 크지만, 이념적 성향에 따라 흔들어대는 정치가 더 큰 문제다.
다양한 팀들이 참여하는 리그를 만들면 부적합한 팀들은 과감히 퇴장시키고도 경기를 진행할 수 있다. 우리 정치는 지역적 기반에 토대를 둔 소선거구제와 맞물려 사실상 양당제로 운영되고 있다.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 문제가 있어도 누가 덜 나쁜지 양자택일해야 하는 구조이다.
새해에는 지난 한 해와 같은 예측 불가한 이변이 없는 세상을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 선거구제 변경에 앞장서는 이변이 일어나길 꿈꿔본다.
이찬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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