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10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후보 지명을 위한 면접을 진행했다. 후보자들을 한 사람씩 백악관으로 불러 대화를 나눈 뒤, 언론에 평가를 흘렸다. 그가 과거 진행했던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를 떠올리게 한다며 ‘연준 의장 오디션’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후보들에 대한 트럼프의 평가는 이랬다.
“I like her, and I respect her… but I’d like to put my own stamp on it.” (좋아하지만 내 사람을 앉히고 싶어) - 재닛 옐런(Janet Yellen) 당시 연준 의장
“I met with him, and I liked him a lot. He’s a very impressive person, a very talented person.” (마음에 들어. 인상적이고 재능도 많아) - 존 테일러(John B. Taylor) 스탠퍼드대 교수
“I’ve gained great respect for Gary working with him… He’s certainly a candidate.” (같이 일하며 존경심이 생겼어. 분명 후보야) - 게리 콘(Gary Cohn)※ 당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NEC)
※ 한때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으나, 트럼프 비판 이후 사실상 멀어졌다는 평가가 많았다.
“He is a smart guy. And he looks the part.” (똑똑하고, ‘그럴듯해’ 보인다) - 케빈 워시(Kevin Warsh) 전 연준 이사
“He is strong, he is smart. A very talented person. I think he’s a very good man.” (강하고 영리해. 재능도 많아. 아주 좋은 사람이다) - 제롬 파월(Jerome Powell) 당시 연준 이사
승자는 제롬 파월이었다. 트럼프는 파월을 지명하며 강한 기대를 드러냈다.
“He’s strong, he’s committed, he’s smart. If he’s confirmed, Jay will bring his considerable talents and experience to our nation’s central bank.” (상당한 재능과 경험을 중앙은행에 접목시킬 거야)
그리고 9년이 흘렀다. 2026년에도 장면은 낯익다. 다만 이번에는 2017년처럼 후보별로 세세한 ‘평점표’를 공개하진 않았다. 대신 트럼프는 지난달 20일 다보스(WEF)에서 취재진과 대화하던 중 차기 연준 의장 인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Everyone that I interviewed is great… Problem is they change once they get the job.” (면접 본 사람들은 다 괜찮다. 문제는 그 자리에 앉는 순간 달라진다는 거다)
2017년과 2026년이 닮았지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트럼프의 ‘학습 효과’다. 파월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2017년 트럼프는 경기 부양을 뒷받침할 인물을 원했고 파월을 택했다.
그러나 그 뒤 파월이 이끄는 연준은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은 40년 만에 가장 심한 고물가를 겪었다. 파월은 금리 인하에 훨씬 신중해졌다. 트럼프의 인하 압박을 연준 통화정책의 독립성 훼손 시도로 받아들이며 정면으로 맞섰다. 트럼프가 말한 “자리에 앉으면 달라진다”는 탄식은, 사람의 변심을 탓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자리가 요구하는 역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래서 이번엔 트럼프가 반대의 선택을 했다. 30일(현지시간) 매파로 알려진 케빈 워시를 연준 의장에 지명했다. 과거 행보를 보면 ‘호락호락 금리를 내릴’ 타입은 아니다. 워시는 통화정책은 예측 가능하게 운용돼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존 테일러 교수가 만든 ‘테일러 준칙(Taylor rule)’ 같은 ‘룰(rule)’을 중시하는 인물로 분류된다. 테일러 준칙은 간단히 말해 ‘물가가 목표치를 웃돌면 금리를 올리고,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돌면 금리를 내린다’는 공식이다. 2017년에는 테일러 교수도, 워시도 연준 의장 레이스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워시는 이번에는 트럼프의 ‘금리 인하 필요’ 주장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워시는 최근 칼럼 등을 통해 연준이 지나치게 데이터에 의존하고, 위원들이 비슷한 모델에 매몰돼 있다고 비판해 왔다. 경제가 나빠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논리로 읽힌다.
동시에 그는 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을 경계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연준 대차대조표 축소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연준이 보유한 채권을 팔거나 만기 상환을 통해 과잉 유동성을 흡수하자는 얘기다. 금리는 낮추되 통화량은 줄여 성장과 물가를 동시에 잡겠다는 시도다.
교과서적으로 ‘금리 인하’와 ‘유동성 축소’는 충돌한다. 그러나 현실 경제는 때로 엇갈린 정책의 공존도 허용한다. 2022년 연준이 가파르게 금리를 올리는 동안 미국 정부는 재정 지출을 계속 늘렸고, 인공지능(AI)이라는 변수가 더해지며 상충된 정책 속에서도 미국 경제는 예상 밖의 강인함을 보였다. 결국 시장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이번엔 금리를 내리느냐가 아니라 이번엔 물가가 다시 불붙느냐다.
시장도 일단 워시 지명을 반기는 분위기다. 지명 발표 이후 달러 약세가 진정됐고, 금값 상승세도 제동이 걸렸다. 무분별한 인하로 인플레이션 불씨를 되살리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셈이다. 1970년생인 워시의 이력도 만만치 않다. 20대에 모건스탠리에서 투자은행 실전을 익혔고, 30대 초반 백악관 경제정책 보좌관에 기용됐다. 36세에 연준 이사에 올랐고,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선 벤 버냉키 의장과 월가 투자은행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화장품 브랜드 에스떼 로더(Estée Lauder) 가문의 사위이기도 하다. 그의 장인 로널드 라우더는 트럼프와 깊고 오랜 인연을 가진 인물로 거론돼 왔다. 정책이든 인사든, 미국 권력의 세계에서 ‘경력’만큼 중요한 것이 ‘신뢰의 동선’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제 워시의 의회 인준 과정이 진짜 관전 포인트다. 기준금리는 내리면서 연준이 보유한 채권을 시장에 내놓거나(혹은 만기 도래분을 재투자하지 않거나) 유동성을 줄이면 단기금리는 내려가도 장기금리는 오를 수 있다. 연준이 줄일 수 있는 자산도, 정부가 새로 발행할 국채도 장기물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장기 금리 상승은 곧 정부 이자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일찌감치 재무부와 연준의 긴밀한 협력 필요성을 역설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준은 2025년 12월 1일부터 양적 긴축(QT)을 중단했다. 워시가 다시 대차대조표 축소에 속도를 낸다면, 나라 살림을 챙기는 재무부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국면이 될 수밖에 없다.
워시가 연준의 독립성을 지키면서 달러 약세에 제동을 건다면 글로벌 자금의 미 국채 수요를 되살릴 수도 있다. 다만 트럼프가 다른 나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행보를 계속한다면 주요국들은 비경제적 이유로 달러 자산 보유를 기피할 가능성이 크다. 금리는 숫자지만, 달러는 신뢰다. 그리고 신뢰는 통화정책만으로 관리되지 않는다.
권력은 견제에 의해 균형을 이룰 때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역대 연준 의장 중 지금처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취임한 이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미국과 달러의 위상은 변곡점에 섰다. 코스피 5000을 넘보는 우리에게도 특히 중요하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안영(晏嬰)은 권력자 최저(崔杼)가 장공(莊公)을 시해한 사실을 알면서도 조문을 갔다. 궁정은 숨을 죽였고, 사람들은 묻지 않아도 알았다. 조문이 애도인지, 충성인지, 혹은 도발인지. 자칫 반역자로 몰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때 안영은 ‘군주’가 아니라 ‘사직(社稷)’에 충성한다는 원칙을 꺼내 들었다.
“군주가 사직을 위해 죽는다면 나도 죽고, 사직을 위해 망명한다면 나도 망명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죽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망명한다면, 누가 그를 따르겠는가?” (君爲社稷死則死之, 爲社稷亡則亡之. 若爲己死而爲己亡, 非其私昵, 誰敢任之?)
최저의 측근들이 안영을 죽이자고 했다. 그러나 최저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은 사람을 죽이면 민심을 잃는다”며 물러섰다. 칼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듯 보이는 순간에도, 권력은 결국 민심과 질서를 계산한다.
연준 의장 인선이 ‘정책의 공식’이 아니라 ‘충성의 방향’을 묻는 시험이 되는 순간, 시장이 더 먼저 반응하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다. 사람에게 충성하면 사람을 바꿔야 하고, 제도에 충성하면 권력이 불편해진다. 워시가 진짜로 맞닥뜨릴 싸움은 금리 몇 차례의 문제가 아니다. 연준이 안영의 자리에 설 것인지, 최저의 질문에 대답할 것인지—그 선택이 달러의 신뢰를 좌우할 것이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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