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나 귀신 본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아 ‘송구라’로 불렸다. 그 거짓말을 계기로 ‘청춘시대’(JTBC)는 본격적인 스토리를 풀어나갔다. 사실 “거짓말이지만 자기도 모르는 진실을 말하고 싶어 거짓말을 하는 캐릭터”(박연선 작가)였다. 타인에 대한 상당한 관심 덕에 개입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덕에 모든 관계의 중심에 선 ‘오지라퍼’가 됐다. ‘조증’을 안은 듯 늘 붕떠있는 캐릭터였고, 그러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진심을 담은 한 마디를 던졌다. 음담패설은 기본, 모태솔로 탈출을 위해 사활을 건 과장된 캐릭터이기에 더 도드라졌다. 배우 박은빈이 ‘청춘시대’에서 연기한 송지원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였다. 한 집에 모여살던 다른 인물들의 사건 사고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고 비밀이 밝혀질 때에도 송지원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드라마는 애초 16부작으로 기획됐지만, 방송사 편성을 위해 대본이 떠돌던 때에 12부작으로 줄게 됐다. 송지원의 에피소드가 사라진 건 이 때문이었다. 박은빈은 사라진 4부의 주인공이었다.
대본을 집필한 박연선 작가는 “그 정도로도 충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비밀이 다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어떤 한 가지를 알았다고 해서 그게 사건의 전부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며 “송지원이 가진 진짜 비밀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시종일관 밝은 모습만 보였다고 생각한다. 마음 속에 무게를 가진 사람은 그걸 덜어내기 위해 더 밝은 쪽으로 행동한다. 그 비밀을 켜켜이 위장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술수였다”고 말했다.
인물에 대한 배경설명이 없었기에, 캐릭터에 대한 해석은 오롯이 배우의 몫으로 돌아갔다. 아역배우 출신 박은빈은 그간의 이미지와도, 실제 자신의 성격과도 정반대인 역할을 만나 고심을 거듭했다. 드라마를 마친 박은빈을 만나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개인 스토리에 대한 단서가 없었어요. 속마음을 드러내는 내레이션도 자책이나 다른 사람을 관찰한 내용이지 자기 이야기가 없더라고요. 송지원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22년의 공백이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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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거짓말을 할까’, ‘왜 오지랖일까’ 궁금한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이미 대본이 완고된 상태에서 시작했고, 박은빈 역시 처음엔 “그저 재밌는 캐릭터라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파고 들다 보니 어렵더라고요. 미스터리한 인물이었어요. 가장 앞에 있지만 가장 뒤로 물어난 인물, 그렇게 떠들면서도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마디도 안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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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분석을 위해 노트를 만들어 생각나는 대로 그 사람의 인생을 적어가길 반복했다. “의문점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여러 가지 성격을 나열해보기도 하고요.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정도예요.(웃음)”
꼼꼼히 준비하는 ‘노력하는 배우’ 박은빈에게 주어진 미션이 있었다. 연출을 맡은 이태곤 감독은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충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박은빈은 그러다 “정말 기술적으로 대충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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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빈이 만든 송지원은 “보여지는 모습과는 정반대 성격의 인물”이었다. “무리 밖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끌어들이면서도 스스로는 마지막까지 비밀을 꺼내놓지 않아요. 오히려 혼자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 과정들 때문에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고요.” 드라마에선 송지원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기에 상상력은 무한대로 발휘될 수 있다. 박연선 작가에게도 “송지원의 이야기는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을 남겼다.
박은빈은 사실 이번 작품에서 연기한 송지원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다. “어릴 땐 내성적”이었고, 지금은 많이 밝아져 “내향적인 정도”라고 한다. 이 연기 덕에 ”평생 써보지 않은 말도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비슷한 또래를 살고 있는 박은빈의 청춘은 드라마 속 대사처럼 “앞날이 구만리라도 오늘 당장은 퍼마시는” ‘잘 노는 청춘’만은 아니었다. “20대 초반의 전 밖으로 시끌벅적한 시간들을 보내진 않았어요. 저에게 청춘은 계속해서 고민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요.” 이 시기는 어쩌면 박은빈에게 찾아온 또 다른 사춘기였는지도 모른다
이미 18년째 연기를 하고 있다. “어릴 땐 즐겁기만 했어요. 그 때의 연기는 그저 노는 거였고, 휴식같은 거였어요. 어느날 책임감이 생기면서 막중한 임무로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제가 무슨 생각으로 연기를 하는지, 무슨 용기로 이렇게 부딪힐 수 있었는지, 겁이 났던 시기요. 앞으로 잘 할 수 있을까 무서웠죠.“
연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건 MBC ‘태왕사신기’를 촬영하면서였다. “이전까진 공부보다 연기가 쉬웠는데, 그 때부턴 달라지더라고요. 동적이지 않았던 제가 동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다른 인물을 살아내는게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역배우로 폭 넓은 활동을 하면서도 박은빈은 학업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서강대 심리학과에 진학했고, 학교 생활도 성실히 해냈다. “둘 다 놓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는 이 일이 너무 힘이 드니까 계속 그만 두자고 하셨죠. 제가 공부를 놓지 않았던 건 혹시 모르는 나중을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일을 하다가 상처도 많이 받고, 그러면 언젠가는 스스로 행복한 길을 찾아나서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어른들은 모를 거라고 생각해도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들도 다 알고 있어요. 지금은 달라졌지만 예전엔 아역배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만나는 아역들을 존중해주고 싶어요. 그들의 선택에 대해서요.”
대학에서의 전공 수업은 박은빈에게 연기를 조금 더 깊이 고민하게 해줬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이 할 수 있게 됐던 것 같아요. 그걸 통해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요.” 캐릭터 노트를 작성한 것도 지난해 방송된 ‘비밀의 문’(SBS)에서 혜경궁 홍씨 역할을 맡으면서였다.
“그간 해왔던 제 연기가 부끄러웠어요. 그냥 노는 기분으로 해선 안 되는데, 연기라는게 작품 속에서 만큼은 온전히 한 인물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 사람의 인생의 깊이를 고민할 수록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18년차요? (웃음) 너무 쑥스러워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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