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업 디지털자산 사업 접목 속도
쿠팡 가맹점 실시간 정산 수수료 절감
포스코인터, 온체인 무역금융 실증확대
현대차, 미국·멕시코 법인 송금 테스트
삼성월렛, 스테이블코인 핵심채널 기대
기업별 각기 다른 스테이블코인 전략
결제·정산·무역금융·채널 혁신 추진
본사업 전환 위해 조속한 법제화 필수
“가전기업은 물론 온라인·오프라인 유통사들도 만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먼저 디지털자산 사업 협력을 문의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국내 5대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13일 헤럴드경제에 일반 기업들의 스테이블코인 관심도를 이같이 전했다. 제도화 논의 초기 단순히 관심을 보이던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쿠팡과 포스코인터내셔널,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 주요 대기업이 결제와 정산, 무역금융 등 저마다 사업에 맞는 활용처를 찾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제도화 속도에 맞춰 기업들이 디지털자산을 단순한 관심 대상이 아닌 사업 인프라 중 하나로 인식하고 실제 사업에 접목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49조 매출’ 쿠팡, 디지털자산으로 수수료 절감 추진=유통 플랫폼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에서 주목하는 영역은 결제와 정산이다. 대규모 이용자와 가맹점, 자체 결제 인프라를 갖춘 만큼 스테이블코인을 기존 사업에 접목할 수 있는 접점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특히 쿠팡처럼 연간 매출이 49조원에 이르는 대형 플랫폼은 거래 규모가 큰 만큼 결제·정산 구조를 조금만 효율화해도 비용 절감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최근 우리은행과 쿠팡이 진행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술검증(PoC)도 이런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양사는 쿠팡이츠 주문 결제를 바탕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가맹점 정산에 활용하는 과정과 은행 계좌·전자지갑 사이에서 원화와 스테이블코인을 전환하는 온·오프램프(On/Off-Ramp) 기능 등을 검증했다.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시험했다. 첫 번째는 기존 신용카드 결제망을 그대로 이용하되 가맹점에 대급을 지급하는 정산 단계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기존 오프체인 결제망과 블록체인 기반 정산을 연결할 수 있는지 살펴본 것이다.
두 번째는 결제부터 정산까지 모두 스테이블코인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가맹점이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금을 지급받고, 이를 다시 다른 결제에 사용할 수 있게 해 온체인 안에서 자금이 순환하도록 했다. 우리은행은 은행 계좌와 전자지갑을 연결해 원화와 스테이블코인을 전환하는 역할을 맡았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스테이블코인 실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12월 땡겨요 앱을 기반으로 관련 결제 기술을 검증했다. 당시 국내 유통사와 함께 스테이블코인을 오프라인 결제에 연계하는 구조까지 설계했지만 실제 가맹점을 대상으로 한 현장 테스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전언이다.
우리은행과 쿠팡 역시 이번 PoC에서 실제 가맹점 대신 가상의 가맹점을 만들어 스테이블코인이 지급·정산되는 과정을 구현했다. 실증에는 쿠팡이 투자한 레이어1 블록체인 템포(Tempo)를 활용했다.
업계에서는 유통업체가 스테이블코인에 관심을 갖는 이유로 결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부담을 꼽는다. 거래 규모가 큰 유통 플랫폼 기업에서는 1% 안팎의 수수료도 누적되면 적지 않은 비용이 되는 만큼 수수료를 낮출 수 있다면 도입 유인이 크다는 설명이다. 업계 전문가는 “매출이 49조원이면 1.8% 수수료만 적용해도 규모가 상당하다”며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금융 수수료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기존 포인트·간편결제 인프라와 결합하기 쉽다는 점도 강점이다. 유통사들은 이미 포인트 앱과 바코드 결제 등 자체 고객 접점을 갖추고 있어 별도 채널을 만드는 부담을 덜 수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나 일본 등 해외 사업 비중이 큰 기업은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포인트의 한계를 넘어 해외 계열사와의 대금 지급이나 정산으로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용자 입장에서는 기존 포인트를 쓰는 것과 경험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기존 앱과 바코드 결제 방식을 유지하면서 뒷단의 결제수단만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꾸는 구조를 구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온체인 ‘무역금융’ 꿈꾸는 포스코인터=유통사와 달리 종합상사가 주목하는 영역은 해외송금과 무역금융에 가깝다. 해외 법인과 거래처가 많은 종합상사 특성상 국가별로 흩어진 거래·정산 정보를 하나의 장부에서 관리하고 무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출채권까지 디지털화할 경우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최근 서로 다른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 같은 가능성을 잇달아 검증하고 있다. LG CNS와 진행한 PoC에서는 레이어1 블록체인 인젝티브(Injective)를 통해 무역거래에서 발생한 매출채권을 디지털 자산으로 발행하고 이전·정산·관리하는 구조를 검증했다. 더미 자산을 활용해 매출채권 발행부터 자산 관리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마련했다. 본사와 해외법인, 거래 상대방이 거래 정보를 공동원장에서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방식도 구현했으며 신용장(LC)과 무역서류 검토에는 인공지능(AI)을 적용했다.
이와 별개로 하나금융·두나무와는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결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두나무의 기와(GIWA)체인에 해외송금 거래를 기록하고 하나은행의 외환 계좌 시스템과 연동하는 방식이다. 실제 자금은 기존 은행 결제망을 통해 이동하지만 송금 지시와 거래 상태 등은 블록체인에서 공유한다. JP모건의 기관용 블록체인 결제망 키넥시스(Kinexys)와 유사한 구조다.
지난해에는 키넥시스와 블록체인 기반 결제망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양사는 연간 약 4만건에 달하는 해외송금을 실시간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기존 1~2일 걸리던 무역대금 송금을 수분 안에 마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이를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기존에 해오던 무역금융 업무를 디지털화하는 흐름으로 보고 있다. 이전부터 신용장과 무역대금, 매출채권을 활용한 금융에 적극적이었던 만큼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과 매출채권 토큰화 역시 기존 사업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향후에는 매출채권 토큰화와 해외송금·결제 인프라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무역 과정에서 발생한 매출채권을 온체인에서 발행·관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한 뒤 대금 지급과 정산까지 블록체인으로 연결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무역금융은 거래 규모가 큰 만큼 처리 속도와 수수료, 확장성이 중요하다. 여러 국가의 규제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한국 외에도 80곳이 넘는 해외 거점을 두고 있는 만큼 국내 규제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며 “각국의 컴플라이언스 요건을 함께 반영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멕시코 법인 간 스테이블코인 주고받은 현대차=현대자동차그룹도 스테이블코인 상용화를 염두에 두고 관련 실증을 이어가고 있다. 해외 곳곳에 공장을 두고 있는 만큼 실제 법인 간 송금에 스테이블코인을 적용하기 위한 상용화 준비 성격이 짙다.
1차 송금 PoC는 현대차 미국법인과 멕시코법인 사이에서 진행됐다. 미국법인이 2만달러를 보내면 이를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USDT로 전환해 멕시코로 이전한 뒤 다시 달러로 바꾸는 방식이다. 송금과 검증을 포함한 전 과정에는 평균 7분이 걸렸다. 실증에는 현대카드와 현대차의 미국, 멕시코법인을 비롯해 테더, 아발란체(Avalanche), 블록체인 결제 인프라 기업 액심(Axiym)이 참여했다.
해당 PoC의 특징은 현대차 해외법인이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보유하거나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액심은 테더와 직접 연계해 USDT를 발행(민팅)하거나 조달할 수 있는 권한을 갖추고 있어 스테이블코인은 액심의 지갑 간 자금 이동 단계에서만 쓰였다.
현대카드와 현대차는 이번 실증에서 해외법인의 회계·세무·법무·내부통제 등 실제 상용화 과정에서 필요한 규제 사항도 함께 점검했다.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보유하지 않는 구조를 택한 것도 기업의 디지털자산 보유에 따른 규제 부담을 줄이면서 송금 속도와 비용 개선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카드 유럽 내 현대차 해외법인을 대상으로 2차 PoC에 들어간다고 지난달 밝혔다. 이번에는 달러뿐 아니라 현지 통화를 활용해 송금하고 환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까지 따져 스테이블코인 송금의 실질적인 경제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실증 지역으로는 체코 등 현대차 생산거점이 있는 국가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월렛’ 가진 삼성, 스테이블코인 쓰는 길목 노린다=삼성전자는 최근 글로벌 달러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관련 사업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갤럭시 스마트폰과 삼성월렛 등 이미 대규모 이용자와 맞닿은 디바이스·결제 인프라를 갖췄다 보니 스테이블코인 확산시 핵심 채널로 활약할 수 있다고 본다.
6월 삼성전자는 비자와 마스터카드 등 글로벌 기업 140여곳이 참여한 오픈USD(OUSD) 컨소시엄에 이름을 올렸다. OUSD는 준비금에서 발생하는 이자를 발행사가 독점하지 않고 참여 기업과 나누는 구조를 제시해 주목받았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방식이 글로벌 2위 달러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서클의 시장 지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OUSD 참여 배경으로 결제와 연결할 수 있는 자체 사업 영역이 넓다는 점을 꼽는다. 가전과 스마트폰, 반도체 등 전 세계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많은 만큼 스테이블코인을 결제·송금에 접목하면 자금 이동의 시간과 비용을 줄일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디지털자산 사업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기업”이라며 “이미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 수 있는 디바이스와 페이 플랫폼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용카드를 삼성월렛에 등록해 사용하는 것처럼 스테이블코인을 월렛에서 받아 결제로 연결하는 구조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달 런던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 2026 행사에서 삼성월렛에 스테이블코인 기능을 탑재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리 딘햄 삼성전자 프로덕트 매니저(PM)는 “주요 모바일 브랜드 가운데 처음으로 스마트폰에 스테이블코인을 기본 탑재하는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은 국내 금융권을 비롯해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과 디지털자산 사업을 논의하기 위한 미팅도 진행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모바일 디바이스와 월렛이라는 강력한 이용자 접점을 갖고 있어 결제 영역에서 활용도가 높다”며 “글로벌 생산거점도 많은 만큼 장기적으로는 해외 법인 간 결제나 기업간거래(B2B) 자금 이동까지 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일반 기업이 디지털자산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제도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가 지방선거 전후로 동력을 잃으며 입법 일정이 반년 넘게 밀리는 사이 기업들의 사업 추진 속도도 한풀 꺾였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일반 기업들로부터 관련 사업 문의가 많이 들어왔다”면서도 “법제화가 늦어지면서 예전만큼 적극적으로 디지털자산 사업을 검토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예은 기자
kyo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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