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에서 외부 식사약속이 있는 날에는 현금이 많이 필요해 미리 은행에서 뽑아둬야 한다. 은행 창구에는 지폐계수기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반면 알제리 청년층은 ‘야시르’ 앱으로 식사를 주문하고 택시를 부른다. 스마트폰 하나로 일상이 해결된다. 한 사람은 여전히 현금의 시대를 살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모바일 플랫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얼핏 상반된 모습이지만, 이것이 오늘날 알제리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는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최대 영토를 가진 알제리는 사뭇 결이 다르다. 지금 이 나라는 첨단 AI 기술보다 종이와 현금 중심의 경제를 모바일 네트워크와 전자 데이터 기반으로 바꾸는 디지털 전환(DX)에 집중하고 있다.
알제리는 대표적인 현금 중심 사회다. 시장에서는 동전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은행에는 현금다발이 쌓여 있다. 카드결제가 가능한 식당을 찾기도 어렵다. 언뜻 우리 시각에서는 이런 모습이 불편해 보일지 모르지만 알제리인들에게는 모바일 뱅킹이 더 어색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승차공유 서비스로 출발한 알제리판 우버인 ‘야시르’는 음식 배달과 간편결제 ‘야시르 페이’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알제리 최초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마트폰 몇 번의 터치만으로 호출하고 결제하는 경험은 소비자들의 생활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이는 단순한 스타트업의 성공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이 사회적 관행을 변화시키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알제리는 유선 인터넷과 신용카드 중심의 발전 단계를 건너뛰고 모바일 금융과 간편결제로 직행하는 ‘모바일 립프로깅’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거대한 전환기가 한국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다. 아직 디지털 인프라를 넓혀가야 하는 알제리는 검증된 디지털 솔루션을 가장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시장이다. 한국이 축적해 온 이동통신망 구축 경험과 간편결제 시스템, 전자정부 플랫폼, 세무 전산화 등은 알제리가 필요로 하는 분야와 맞닿아 있다.
기회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모바일 경제가 확대될수록 본인인증, 데이터 암호화 등 정보보안과 배송관리 시스템 등 연관 산업의 수요도 빠르게 늘어난다. 이런 분야에 유망한 한국 IT 중소·중견기업들이 많다. 지금까지 한국의 대알제리 수출이 자동차와 기계 등 산업재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로 확대되면서 수출품목의 다변화 또한 가능해진다.
새로운 시대에는 그에 걸맞은 인프라가 필요하다. 알제리는 지금 현금 중심 사회에서 디지털 경제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고 있다. AI라는 거대한 흐름과 별개로, 알제리만의 디지털 흐름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야시르가 열어젖힌 모바일 경제의 변화 위에 한국의 디지털 전환 경험과 기술이 가미된다면, 이는 양국의 성공적인 경제협력 사례가 될 수 있다. 알제리에 ‘K-디지털’은 일상의 편리함과 윤택함을 가져다줄 수 있고, 한국 기업들은 새로운 수출 판로를 개척할 수 있다.
장명철 코트라 알제무역관 관장
ey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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