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태열 건강의학 선임기자] ‘화병’ 또는 ‘홧병’이라 불리는 질환은 유독 한국인에게 많은 병으로 알려져 있다. ‘화병’은 미국정신의학회에서도 ‘화병(hwa-byung)’이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이 신체화된 질환으로 해석’이 우리말 그대로 등재돼 있을 만큼 외국에서도 우리나라 문화에서 발생되는 특별한 병으로 인정하고 있다.
다만 2013년 개정된 5판에서는 기존 정신질환과 달리 별도의 특수 질환으로 다룰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해 정식 진단명으로 인정되지 않고 삭제됐다. 다른 병명으로도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하다는 취지다. 이후에는 세계보건기관이 작성한 국제질병분류인 ‘ICD-10: F34.8‘에서 <기타 장기적 정서 장애(Other persistent mood disorders)> 분류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정의된 ‘화병’의 의미는 마음속의 분노, 울분을 억지로 억제해서 생기는 통증·피로·불면증 등 다양한 병증을 통칭하는 말이다. 치미는 울화를 제대로 발산하지 못해 생기는 병으로 그래서 ‘울화병’이라고도 한다. 화병은 억울하거나 답답한 감정, 속상함 등의 스트레스가 장기간 쌓여 신체적 증상으로 발현되는 증후군으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과는 조금 다르다. 한국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김열규 선생은 “화병은 한국인의 심암(心癌)으로, 마음속에 기생하는 악성 종양”이라고 했다.
의학적으로 정의되고 설명되는 ‘화병’은 억울함과 분노를 오랫동안 억누르면서 분노·원망 같은 정서적 증상과 가슴 답답함, 몸속에서 열이 오르는 느낌 등의 신체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질환이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과 증상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화병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고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정서·신체 증상을 함께 살펴보는 화병종합검사가 개발됐지만, 실제 진료에서 화병을 선별하고 다른 정신질환과 감별하는 성능은 명확히 검증되지 않아왔다.
‘화병’ 증상이 유독 우리나라에 흔한 이유에 대해서는 유교 문화적 억압구조를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특히 중년 여성들에게 이 병이 많은데 희생하고 인내를 강요당하는 가족 관계나 사회 구조 탓이라는 설명이다. 화병이 중년 여성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년 남성들에게서도 화병은 발견된다. 2014년 강동경희대병원에 따르면 화병클리닉 치료 환자 중 40세 이상 남성의 수는 2011년 54명에서 불과 1년 만에 139명으로 2.6배로 늘었다고 발표한바있다. 직장인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2015년 1월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4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90퍼센트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화병을 앓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병이 생긴 이유는 ‘상사, 동료와의 인간관계에 따른 갈등’(63.80퍼센트)이 가장 많았다. 이어 ‘과다한 업무, 업무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24.89퍼센트), ‘인사 등 고과산정에 대한 불이익’ (3.62퍼센트), ‘이른 출근 및 야근으로 인한 수면 부족’(3.17퍼센트), ‘퇴출,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2.71퍼센트) 등이었다.
실제로 ‘화병’이라고 병원에서 진단받은 유병률도 매우 높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지난 2019년 화병으로 한방병원을 찾은 환자 수는 1만4천여명이었다. 특히 20대 환자 수는 1천895명으로 4년새 1.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스트레스 반응 및 적응장애로 병원을 찾은 사람으로 범위를 넓히면 환자 수는 16만여명으로 늘어난다. 2026년 현재는 어떨까? 발표된 숫자는 없지만 이전에 비해 나아진게 없는 억압적 사회구조와 함께 불공정과 과도한 경쟁구조, 정치적 극단주의 등이 현존하는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연구에서는 이런 사회적인 요인과 함께 개인적인 유전이나 성격적, 생리학적 특징들이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증이나 낮은 외향성, 지적 개방성 등이 화병을 부르는 성격적 요인이며 또 지나친 자기 비하나 신체적 질병 등도 화병을 키운다고 한다.
수 년전에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설문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조사에 응한 전국 18세 이상 성인 1천500명 중 절반을 넘는 54.9%는 울분의 고통이 지속되는 ‘장기적 울분 상태’였다. 또 12.8%는 높은 수준의 심각한 울분 상태였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69.5%나 됐다. 한편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와 관련해 25.6%는 불만족이라고 답했고 보통은 40.1%였다. 만족은 34.3%에 그쳤다.
그렇다면 ‘화병’은 어떻게 치료해야할까? 그동안 ‘화병’은 치료라기보다는 예방위주의 조언이 대부분이었다. 예방법은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법을 익히고 ‘감정일기’를 쓰면 도움이 된다는 등이다. 즉 감정을 옮기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 통제력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소리 내어 우는 것도 권고한다. 화병으로 과다 분비된 스트레스 호르몬이 눈물을 통해 배출돼 안정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최근 이를 위해 정서·신체 증상을 함께 살펴보는 화병종합검사가 개발됐지만, 실제 진료에서 화병을 선별하고 다른 정신질환과 감별하는 성능은 명확히 검증되지 않아왔다. 최근에는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김종우 교수 연구팀은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화병종합검사(Hwabyung Comprehensive Test, HCT)의 정확도를 분석한 결과, 화병 가능성을 선별하고 다른 정신질환과 구분하는 보조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음을 밝혔다.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Diagnostics’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실제 진료 환경과 유사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화병종합검사의 선별 정확도와 감별 가능성을 확인하고, 임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준점수를 찾고자 했다. 2025년 2월부터 6월까지 서울 소재 대학병원을 방문한 성인 중 분노와 억울함, 가슴 답답함, 열감 등 화병 관련 증상을 호소한 182명을 대상으로 전향적 연구를 시행했다.
참여자들은 전문 의료진의 구조화된 임상 면담을 거쳐 화병군 100명과 비화병군 82명으로 분류됐다. 비화병군에는 우울장애,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면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 36명과 정신질환 진단을 받지 않은 46명이 포함됐다. 연구에 활용된 화병종합검사는 김종우 연구진이 공동 개발한 평가도구로, 가슴 답답함과 열감 같은 신체 증상 6문항과 원망·분노 등 정서 증상 7문항으로 구성된다.
화병 가능성 선별하는 기준점수 확인분석 결과, 화병 환자는 다른 정신질환이 있거나 정신질환 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보다 화병종합검사 점수가 높았다. 화병종합검사는 총 52점 만점이며, 연구팀은 33.5점을 화병 가능성을 선별하는 기준점수로 설정했다. 이를 임상 면담으로 분류한 두 집단에 적용한 결과, 화병군 100명 중 71명(71.0%)이 화병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류됐다. 비화병군 82명 중에서는 68명(82.9%)이 비화병으로 정확히 구분됐다. 이번 결과를 통해 화병종합검사가 실제 진료에서 화병 가능성을 먼저 살펴보는 선별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신체 증상 점수로 다른 정신질환과 감별 보조가슴 답답함과 열감 등을 평가하는 신체 증상 점수는 화병과 우울·불안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을 구분하는 데 보조적인 역할을 했다. 신체 증상 점수는 24점 만점 중 16.5점을 기준으로 적용했을 때, 다른 정신질환 환자의 83.3%를 화병이 아닌 것으로 구분했다. 이에 연구팀은 총점 33.5점으로 화병 가능성을 먼저 살펴본 뒤, 신체 증상 점수 16.5점을 추가로 확인하는 단계적 평가 방식을 제안했다. 다만 화병종합검사는 확진 도구는 아니며, 결과는 전문 의료진의 면담과 임상 판단을 돕는 참고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화병 특성 반영한 단계적 평가 기준 제시이번 연구는 증상이 없는 일반인뿐 아니라 화병과 증상이 겹칠 수 있는 다른 정신질환 환자를 포함해 검사의 임상적 활용 가능성을 평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화병의 정서적 증상과 신체적 증상을 함께 살펴보고, 전체 점수와 신체 증상 점수를 진료 목적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했다. 다만 연구가 단일 의료기관에서 진행됐고, 참여자 대부분이 중년 여성으로 구성됐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향후 다기관 연구를 통해 검사 기준의 적용 가능성을 추가로 확인할 계획이다.
김종우 교수는 “화병종합검사는 화병의 정서적 증상과 신체적 증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공동 개발한 평가 도구”라며 “이번 연구는 전체 점수로 화병 가능성을 먼저 확인하고, 신체 증상 점수를 추가로 활용하는 단계적 평가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화병종합검사는 화병을 단독으로 확진하는 검사가 아니라 임상 면담과 진단을 돕는 보조 도구”라며 “앞으로 다양한 연령과 성별, 의료기관을 포함한 후속 연구를 통해 임상 활용 가능성을 높여가겠다”고 말했다.
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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