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3.5조 비만신약 수출로 ‘체성분 개선’ 글로벌 치료 패러다임 선도
SK바이오팜, 1.1조 임상후기 신약 도입…美 직판망 태워 ‘멀티 신약 기업’ 도약
삼성바이오로직스, 3조 유증으로 2.7조 스위스 M&A 완결…글로벌 1위 초격차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3조원대 기술수출(한미약품). 1조1000억원대 신약 후보물질 도입(SK바이오팜). 2조7000억원대 M&A(삼성바이오로직스).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잇달아 터져 나온 초대형 이벤트는 K-바이오가 더 이상 변방의 추격자나 단순 연구개발(R&D) 하청 기지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올해 들어 누적 기술수출 규모가 16조원에 육박하는 등 양적·질적 성장이 동시에 폭발하며 한국 바이오산업의 체질이 글로벌 무대에서 판을 직접 주도하는 ‘글로벌 룰 세터(Rule Setter·시장 규칙 제정자)’로 완전히 진화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분기점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글로벌 제약 생태계 내 주도권의 역전이다. 그동안 K-바이오의 전형적인 성공 방정식은 국내에서 발굴한 초기 물질을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수출하고 이후의 개발과 상업화는 해외 파트너사에 맡기는 형태였다. 그러나 SK바이오팜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사인 바이오헤이븐으로부터 글로벌 임상 2/3상 단계의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 ‘오파칼림’과 ‘Kv7 디스커버리 플랫폼’의 전 세계 독점 권리를 1조1000억원에 사들인 것은 정반대의 흐름이다.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상용화가 임박한 유망 자산을 직접 감정해 사들이는 ‘원매자(Buyer)’로 완벽히 등극했다.
이는 이미 구축된 글로벌 인프라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도약이다. SK바이오팜은 미국 뇌전증 브랜드 신약 1위에 오른 ‘엑스코프리’를 통해 150여 명 규모의 현지 전담 직판망을 확보해 뒀다. 외부에서 들여온 두 번째 제품(2nd Product)을 즉시 직판망에 태워 마케팅 인프라 시너지를 극대화함으로써, 단일 품목(One-product) 기업의 한계를 깨고 복수의 혁신신약을 직접 파는 다국적 제약사형 사업 모델을 완성했다.
신약 R&D의 질적 수준 역시 단순 모방(패스트 팔로어)을 넘어 시장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계열 내 최초 신약)’ 단계로 올라섰다. 한미약품이 로슈 그룹 자회사 제넨텍과 체결한 최대 23억달러(약 3조5000억원) 규모의 ‘HM17321’ 기술수출이 대표적이다. 기존 GLP-1 치료제의 고질적 한계였던 근육 손실을 극복하고 체중 감량과 근육 보존을 동시에 유도하는 독창적인 비인크레틴(UCN2 유사체) 기전은 글로벌 빅파마가 가장 갈증을 느끼던 미충족 수요였다. 한국 바이오텍이 설계한 과학적 기전이 글로벌 비만 치료 패러다임의 기준점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러한 신약 개발 경쟁력은 올해 사상 최대 수준의 기술수출 실적으로 증명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수출은 총 12건으로, 계약 규모가 공개된 9건의 총액만 15조9000억원대에 달한다. 과거 전임상 단계의 초기 물질을 넘기던 구조에서 벗어나, 임상 단계에서 유효성을 입증한 파이프라인과 플랫폼 기술 중심의 수출이 늘면서 반환 의무가 없는 선급금 등 계약 조건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해졌다.
여기에 조 단위 자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생산 거점과 차세대 모달리티(치료 접근법)를 단숨에 흡수하는 초대형 스케일도 본궤도에 올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하며 지난 7월 국내 바이오 M&A 사상 최대 규모인 14억6000만스위스프랑(약 2조7000억원)에 인수를 발표한 스위스 ‘폴리펩타이드그룹’ 지분 100% 확보를 연내 최종 마무리 짓는다.
1996년 페링에서 분사한 폴리펩타이드그룹은 1000건 이상의 개발·생산 실적과 친환경 유기용매 저감 공정 기술, 1500여명의 전문 인력을 보유한 글로벌 펩타이드 리딩 CDMO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번 인수를 통해 항체, mRNA, ADC에 이어 2035년 200조원 규모로 폭발하는 비만·당뇨의 핵심 원료인 펩타이드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힌다. 동시에 스웨덴, 벨기에, 프랑스, 미국(토런스·샌디에이고), 인도 등 5개국 6개 글로벌 생산 거점을 단숨에 확보하게 됐다. 여기에 송도 제2바이오캠퍼스 증설(시설자금 2948억원 투입)을 통해 총 138만5000ℓ의 세계 1위 생산능력까지 다지며 경쟁사들과의 초격차를 벌렸다. 증자비율 또한 4.9%로 낮춰 주주가치 희석을 최소화하는 자본시장의 성숙도까지 보여줬다.
이 같은 국내 기업들의 약진은 글로벌 임상 지표로도 뒷받침된다. 최근 글로벌 임상시험 전략분석 매체 ‘클리니컬 트라이얼스 아레나’와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신약 파이프라인 중 ‘퍼스트 인 클래스’ 비중은 36%에 달한다. 전 국민의 97%를 아우르는 단일 건강보험 기반의 정밀 의료 데이터와 신속한 규제 환경, 정부의 1조원 바이오 펀드 조성 등 제도적 뒷받침이 결합하며 한국이 아태지역을 넘어 세계 신약 혁신의 허브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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