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로보틱스·AI·반도체 등 10개 분야 지정
기업풀 만든 뒤 우수기업 선별해 집중 지원
500억 ‘한국형 인큐텔’로 초기기업 발굴·투자
신속조달 도입…‘신안보 특별법’ 9월 발의 추진
[헤럴드경제=부애리 기자] 정부가 인공지능(AI), 무인·로보틱스, 반도체 등 미래 안보와 직결되는 기술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을 별도로 발굴해 투자부터 연구개발(R&D), 실증, 조달, 시장 진출까지 전 주기에 걸쳐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기존 전통 방산기업 중심의 육성 체계를 넘어 민간 첨단기술 기업을 국방·안보 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3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실무협의체’ 제2차 회의를 열고 신안보 혁신기업의 발굴과 지원체계를 논의한다. 중기부와 재정경제부, 국방부, 방위사업청, 우주항공청 등 관계 부처가 참여한다.
이번 실무협의체는 지난 6월 청와대 주관 ‘미래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전략회의’에서 제시된 후속 과제를 구체화하는 자리다. 당시 정부는 신안보 혁신기업의 제품·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기 위한 국가계약법 개정과 ‘국방첨단전력사업법’,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관계 부처별 추진현황과 협업과제도 함께 점검한다.
정부는 우선 무인·로보틱스, AI, 반도체, 센서, 미래소재 등 안보 분야에서 중요성이 큰 10개 전략분야를 정하고 관련 중소·벤처기업을 모은 ‘기업풀(POOL)’을 구성한다. 중기부 ‘모두의 챌린지 방산’ 선정기업과 방사청 방산혁신기업, 분야별 공공인증 기술·제품 인증기업, 안보·방산 관련 정부사업 참여기업 등이 후보군이다. 관계 부처와 협·단체의 추천뿐 아니라 기업이 직접 신청하는 방식도 검토한다. 안보 분야 매출 비중과 특허 보유 여부, 관련 기술 R&D 이력 등도 세부 기준으로 논의한다.
이 가운데 기술력과 혁신성, 성장잠재력이 높은 기업을 다시 골라 ‘신안보 혁신기업’으로 육성한다. 정부는 우선 기업풀과 후보기업을 구성한 뒤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대로 혁신기업 지정체계를 본격적으로 가동할 방침이다.
박용순 중기부 중소기업정책실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정책 대상이 되는 안보적으로 중요한 10개 분야를 먼저 지정하고 이 분야 기업들의 풀을 만들 것”이라며 “대규모 지원은 풀 안에서 진짜 우수한 기업을 뽑아 혁신기업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는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특별법에는 혁신기업 육성 추진체계와 혁신기업 등의 지정·취소, 지원 및 특례 등이 담긴다. 중기부는 9월 중 의원입법 형태의 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시행 준비기간이 필요한 만큼 본격적인 혁신기업 지정과 지원은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가능할 것으로 중기부는 보고 있다. 이에 앞서 기업풀 구성과 후보기업 발굴 등 사전 작업부터 진행할 계획이다.
자금 지원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활용해 온 ‘인큐텔(In-Q-Tel)’을 벤치마킹한 ‘한국형 인큐텔’이 도입된다. 한국벤처투자(KVIC) 자회사 형태의 투자회사를 만들어 초기 신안보 기업을 직접 발굴하고 투자하는 방식이다. 내년 정부 예산안에는 중기부와 방사청이 각각 250억원씩, 총 500억원을 반영했다.
한국형 인큐텔은 정부가 투자재원을 100% 부담한다. 이후 성장 단계에서는 방산펀드와 모태펀드 등 민관 합동 자금을 활용한 벤처캐피털(VC) 투자가 이어지고, 더 큰 규모의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는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는 전략기술 투자체계 등을 연계하는 방식이다.
군 조달 체계도 손질한다. 현재 방산 분야에서는 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의 ‘소요’를 정하고 개발·검증한 뒤 실제 획득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드론·AI 등 첨단기술에는 기존 획득체계가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정부는 이에 국가계약법을 개정해 R&D 협약과 구매계약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신속 조달체계를 도입할 계획이다. 국방부와 방사청도 국방첨단전력사업법을 통해 임무 중심의 소요 제기, 공모형 획득, 애자일(Agile) 개발 등 새로운 획득방식을 도입한다.
박 실장은 “미국의 OTA(기타거래권한)는 필요한 기술을 가진 기업과 구매와 기술개발을 동시에 계약해 개발되는 대로 빠르게 구입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중기부의 구매조건부 R&D가 이와 가장 가까운 제도여서 구매연계 R&D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군 데이터와 시험환경도 민간에 개방한다. 국방부의 군·산·학 협력센터와 국방데이터 안심존 등을 활용해 기업에 군 핵심 데이터 접근 기회를 제공하고 민간에 공개할 수 있는 데이터도 지속 확대한다. 실증전담부대와 혁신랩(Lab) 등을 활용해 민간 혁신기술을 실제 군 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도록 하고, 방사청 실증시험 사업을 통한 군 시험장 활용도 지원한다.
신안보 기업이 정부 R&D로 확보한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하는 방식도 바뀐다. 정부는 신안보 혁신기업의 IP를 정부와 기업이 공동 소유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기업이 자부담을 투입해 개발한 기술을 민간 시장이나 해외에서 사업화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는 취지다. 다만 안보상 필요한 핵심기술은 위원회 심의를 거쳐 활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가 기존 ‘방산’ 대신 ‘신안보’라는 개념을 앞세운 것도 민간 활용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다. 최근 전쟁에서는 위성이 전장을 탐지하고 AI가 의사결정을 지원하며 드론의 공격을 수행하는 등 민간 첨단기술과 군사기술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박 실장은 “방산이라고 하면 주로 무기 획득체계를 떠올리지만 최근 안보 기술은 군용뿐 아니라 공공·민간시장까지 함께 바라봐야 한다”며 “신안보는 기존 방산보다 훨씬 폭넓은 제도적 변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중기부는 기업 발굴에서 투자·R&D, 실증, 조달, 국내외 시장 진출까지 연결되는 전주기 지원체계를 관계 부처와 구체화할 계획이다. 박 실장은 “미래 신안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민간이 보유한 혁신기술을 신속하게 발굴하고 실제 국방·안보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혁신 중소·벤처기업이 투자와 R&D, 실증, 조달의 장벽을 넘어 미래 신안보 분야를 이끄는 핵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b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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