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인프라 역량 결집…자회사·소규모기관 정비
전략적 구조개혁 15곳…유사·중복기능 11곳 감축
통폐합 직원 고용승계 보장하고 기존 처우도 유지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정부가 공공기관 109개를 감축하는 대규모 기능개혁에 나선 배경에는 공공기관의 지속적인 외형 팽창과 유사·중복 기능에 따른 비효율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기관 수와 정원·인건비가 늘고 부채가 누적되는 가운데 기관별로 유사·중복 기능을 분산 운영하면서 고정비와 관리비용이 중복 발생하고 있다는 게 정부 진단이다.
인공지능(AI) 대전환과 복합위기 상시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분산된 기능과 역량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정부는 이번 개혁을 통해 국가 인프라의 핵심 역량을 재배치하고 유사·중복 기능을 일원화하는 한편 자회사와 소규모 기관을 정비한다. 이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대국민 서비스를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는 한편 비용 절감을 통해 재정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3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에 따르면 감축 대상은 전체 공공기관의 약 20%에 달하는 109개 기관이다. 국가 인프라 등을 대상으로 한 ‘전략적 구조개혁’으로 15개, 중·대규모 기관의 ‘유사·중복기능 일원화’로 11개, ‘자회사·소규모기관 통합’으로 83개를 줄인다.
국가 인프라 분야는 분산된 기능과 투자 역량을 결집하되 성격이 다른 기능은 분리하는 방향으로 재편한다. 한국남동발전·한국남부발전·한국동서발전·한국서부발전·한국중부발전 등 발전 5사는 하나의 법인으로 합쳐 연구개발과 재생에너지 투자 여력을 모으고 연료·정비자재 공동구매와 중복인력 효율화를 추진한다.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도 통합해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고 국가 차원의 통합 에너지 전략을 수립하되 알뜰주유소 등 유통구조 개선 기능은 한국석유관리원으로 넘긴다. 모든 광업소가 폐광돼 기능이 종료된 대한석탄공사는 청산한다.
항만은 부산항만공사·인천항만공사·울산항만공사·여수광양항만공사를 하나로 합쳐 정책·기획 기능을 일원화하면서 기존 기관은 지역지사로 전환해 지역별 특화사업을 맡긴다. 지역 항만 간 연계를 강화하고 항만공사 간 과당경쟁을 줄인다는 취지다.
공항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를 곧바로 통합하기보다 지방공항 활성화를 먼저 추진한 뒤 통합 여부를 재검토하고 보안 기능부터 전문기관으로 통합·재편한다.
반대로 한 기관에 함께 있던 성격이 다른 기능을 분리하는 개편도 이뤄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개발·주택건설과 주거복지·자산비축 기능을 두 기관으로 나눈다. 정부는 두 기능을 함께 수행하면서 주택공급 속도가 저하되고 임대주택 운영 부담이 가중되는 등 비효율이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개발공사의 이익 일부는 주택도시기금 내 별도 계정에 적립해 주거복지 재원으로 활용하는 구조를 마련한다.
여러 기관에 흩어진 유사·연관 기능은 분야별로 한데 묶는다. 축산 분야에서는 축산물품질평가원·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축산환경관리원의 품질평가·방역·환경관리 기능을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하고, 박물관·과학관 등 전시·관람기관 12곳도 문화·과학·해양·국토·농림 등 분야별로 재편한다.
중·대규모 기관 역시 방송·미디어, 노사·교육, 첨단의료, 중소기업 마케팅 등 유사·중복 업무를 중심으로 기능을 일원화해 11개 기관을 감축한다.
가장 큰 폭의 정비는 자회사와 소규모 기관에서 이뤄진다. 전체 109개 감축 가운데 83개가 이 분야에 집중된다. 모회사와 유사하거나 연관된 업무를 수행하는 자회사는 모회사가 흡수하는 ‘수직적 통합’을 하고 비슷한 업무를 하는 자회사끼리는 ‘수평적 통합’을 추진한다.
금융 공공기관의 시설관리 자회사 5곳은 가칭 ‘정책금융FMC’로, 고객관리 자회사 2곳은 가칭 ‘정책금융CS’로 묶는다. 항만공사의 보안·시설관리 자회사 5곳도 가칭 ‘한국항만보안시설공단’으로 통합한다. 기관별로 흩어진 자회사 기능을 기관 단위가 아닌 기능 중심으로 재편하는 방식이다.
정원 100명 미만 소규모 기관도 기능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통합한다. 식품안전·건설산업·공간정보·국악 등 분야에서 각각 분산된 기관을 하나로 묶는 방식이다.
기관 통합뿐 아니라 업무 성격에 맞춰 일부 기관·기능을 다른 부처나 유관기관으로 넘기는 작업도 병행한다.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으로 이관한다. 일부 지정유보기관은 공공기관 지정요건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정비한다.
해외에 기관별로 흩어진 공공기관 사무소를 한곳으로 모으는 ‘K-마루’ 사업도 확대한다. 현재 LA·하노이·두바이·브뤼셀·나이로비 등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앞으로 공공기관 해외사무소가 5개 이상 있는 주요 도시로 확대한다.
통폐합에 따른 직원들의 고용과 처우에 대해서도 원칙을 마련했다. 이번 기능개혁 대상에 포함된 기관들의 정원은 약 12만8000명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통폐합 기관의 경우 임원을 제외한 직원의 고용승계를 보장하기로 했다. 통폐합 전후 직원 처우가 저하되지 않도록 보수체계를 운영하는 동시에 기관별 복지 수준과 기능개혁 추진 일정 등을 고려해 한시 정액수당 지급과 선택적 복지비 한도 상향도 검토한다. 기능개혁 대상 기관에 대한 경영평가 인센티브 역시 향후 경영평가 편람에 반영할 계획이다.
정부는 노정협의체를 중심으로 노조와 협의를 지속하고 주무부처와 개별 기관 노조 간 협의도 병행한다. 각 부처가 구체적인 기관별 기능개혁 방안을 마련하는 대로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상정·의결하고 법률 제·개정이 필요한 사안은 국회와 협의할 방침이다. 지역별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 지방정부와도 소통하기로 했다.
허장 재정경제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유사·중복 기능은 정비하고 비핵심 기능은 덜어내는 한편, 분산된 기능은 유기적으로 연결해 공공기관이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도록 기능과 역할을 재설계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부처별 기능개혁 로드맵의 수립과 이행을 독려하고 법률 개정 등 별도 절차가 필요하지 않은 기관은 즉시 통폐합하는 등 이번 기능개혁 방안이 신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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