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가이드라인에 재계 혼란 가중

공장 신설·로봇 투입 교섭대상에서 예외

인력 재편 교섭대상…프로젝트 지연 우려

일상적 경영 판단이 노사갈등 이어질 수도

민주노총 소속회원들이 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고용노동부의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전날 노동조합의 ‘영업이익 N% 성과급 요구’나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 반대’ 등은 의무적 교섭대상 및 조정·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시행지침을 발표했다.  [연합]
민주노총 소속회원들이 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고용노동부의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전날 노동조합의 ‘영업이익 N% 성과급 요구’나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 반대’ 등은 의무적 교섭대상 및 조정·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시행지침을 발표했다. [연합]

고용노동부가 이른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에 따른 경영 현장의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시행지침)을 내놨지만, 경제계는 무분별한 노동쟁의 발생 우려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노사관계 전반을 뒤흔들고 있는 ‘영업이익 연동 N% 성과급’에 대해 단체교섭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불확실성을 낮췄지만, ‘공장 신설·이전’이나 ‘인공지능(AI) 신기술 도입’에 수반되는 인력운영 계획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는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따라 추진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반도체 공장 신설이나 현대자동차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 생산시설 도입 과정에서 인력 재배치를 놓고 노사가 평행선을 달릴 경우 프로젝트가 자칫 지연되거나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장 신설·로봇 생산시설 투입 ‘첩첩산중’=4일 고용노동부의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에 따르면 공장 신설·이전 등 기업의 투자 결정이나 AI·자동화 설비 도입 결정은 의무교섭 대상이 아니다. 노조는 해당 결정 자체의 철회를 주장하며 회사 측에 교섭을 요구할 수 없게 됐다.

삼성전자의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이나 현대자동차의 ‘아틀라스’ 투입 결정 자체를 노조가 파업 등 쟁의행위를 통해 막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시행지침은 공장 신설이나 AI 도입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인력 재배치에 대해선 의무교섭 대상으로 규정했다. 사업상 결정 자체는 존중하되 그에 수반되는 인력운영 계획은 반드시 노조와의 교섭이라는 산을 넘도록 문턱을 둔 것이다.

결국 공장 신설·이전이나 신기술 도입 계획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과정에서 언제든 쟁의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는 이미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을 2027년 단체교섭 의제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반도체 공장 다 지어도 노사갈등에 인력 투입 지연될 수도=삼성전자가 호남 반도체 공장에 인력을 재배치할 경우 시행지침에 따라 노사는 ▷근무지·직무 변동 ▷근무형태 변경 ▷ 근무지 이전에 따른 수당 ▷통근·이주비 지원 등을 놓고 또 다시 팽팽히 맞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2029년 호남 반도체 팹 1차 완공을 목표로 속도전을 주문하는 상황에서 노사 갈등이 장기화하면 공장은 지어 놓고 인력 공백으로 인해 실제 가동은 지연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신설 공장에 인력을 투입하는 것을 구조조정·정리해고와 같은 성격으로 분류해 의무교섭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 맞느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투자나 공장 신설·증설, 생산능력 확장에 따른 인력 배치전환은 기존 고용을 축소·재편하는 것이 아니라 새 조직에 필요한 인력을 배분하는 통상적인 인사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시행령 등 보다 명시적이고 안정적인 법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본부장은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메가 프로젝트나 적기의 사업 재편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은 절차적 불확실성이 실질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향후 지침 적용과정에서 혼란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보완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통상적인 인사권 행사도 노사 분쟁으로 이어져”=기업이 노동 생산성 강화를 위해 생산라인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하거나 자동화 설비를 투입하는 것 역시 궁극적으로 교대근무제 변경 등 근무형태에 영향을 주는 만큼 노조가 파업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게 됐다.

노조는 향후 고용 안정을 주장하며 근무시간과 작업방식, 안전보건 대책 등을 놓고 사측과 줄다리기 교섭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각 기업들이 앞다퉈 진행하는 공장 자동화 작업은 차질을 빚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 현대자동차 노조는 개발·제조 계열사인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도입 계획에 대해 노사 합의 없이 추진할 수 없다며 반발한 바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신기술 적용과 이에 따른 업무 재편은 기업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경영 판단”이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치전환이나 작업방식 변경까지 쟁의대상으로 넓힐 경우 일상적인 인사·경영권 행사가 노사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인력의 신속하고 유연한 투입이 필수적인 AI·반도체 대전환 시대에 노사간 분쟁으로 공장 신설, 신기술 도입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에 따른 배치전환은 노동쟁의 대상에서 반드시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일·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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