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푸드코아 회장, 구로공단 노동자 아버지 둔 오남매 장남
소년공 거쳐 공무원 합격…“감추고 살다 털어놓으니 어깨 가벼워”
김준후 대표 “바닥에 떨어진 빵 모두 버려 아까웠다”…3대째 이어진 ‘정직’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제게는 일종의 부끄러운 과거였어요. 그래서 감추고 살아왔죠. 그런데 다 털어놓고 나니까 평생 어깨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가벼워졌습니다”
지난 1일 경기도 안성 푸드코아 공장에서 만난 김영식 푸드코아 회장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묻자 한동안 감춰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달동네 판잣집에서 보낸 유년 시절과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야 했던 소년공 생활 이야기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430억원을 올린 식품기업을 이끌기까지 그의 이력 뒤편에는 오랫동안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가난의 기억이 있었다.
김 회장의 아버지는 서울 구로공단 노동자였다. 가발·봉제·신발 등을 만들어 수출하던 공장들이 몰려 있던 산업화 초기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김 회장은 오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와 오남매 등 일곱 식구가 달동네 판잣집에서 함께 살았다.
김 회장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아버지는 배우지 못하셨고 공장 근로자셨다”며 “그런데 굉장히 엄한 분이었다. 거짓말을 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것을 아주 싫어하셨다”고 회상했다.
가난은 어린 김 회장을 일터로 내몰았다. 지금처럼 청소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 조차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김 회장은 어린 나이에 여러 현장을 돌며 소년공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는 일터에 머무르지 않았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결국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김 회장은 재팬타바코에서 일하며 당시 유명했던 담배 ‘마일드세븐’을 팔았다.
잦은 일본 출장은 훗날 그의 삶을 식품사업 쪽으로 돌리는 계기가 됐다. 일본 편의점에 들어설 때마다 눈에 띈 것은 빵과 디저트 등 식품이 빼곡하게 들어찬 진열대였다. 일본에서 편의점 식품시장이 커지는 모습을 지켜본 김 회장은 한국에서도 편의점 식품과 베이커리 시장이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담배 영업을 위해 오가던 일본에서 발견한 편의점 식품시장의 변화가 이후 식품사업에 눈을 돌리는 배경 중 하나가 됐다.
김 회장은 2009년 푸드코아를 인수했다. 당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회사를 넘겨받아 키웠고 푸드코아와 조이푸드를 합친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1430억원까지 늘었다.
사업가로 성공한 뒤에도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적극적으로 꺼내놓지 않았다.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에 응했지만 주로 사업을 시작한 이후의 이야기였다. 소년공으로 일했던 청년기 이전 삶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김 회장은 “엄청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었는데 그걸 굳이 밝힐 필요가 있나 싶었다”며 “제게는 부끄러운 과거라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감추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가 마음을 바꾼 것은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 요청을 받고 나서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제작진은 김 회장의 사업가 이전 삶에 주목했고 안성까지 직접 찾아왔다. “30분만 만나달라”는 요청에 제작진과 마주 앉았고 대화 끝에 출연을 결정했다.
촬영은 약 6일간 이어졌다. 김 회장은 이 과정에서 판잣집 생활부터 소년공 시절까지 그동안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풀어놨다. 뜻밖의 변화는 촬영을 마친 뒤 찾아왔다.
김 회장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양 어깨를 가리키며 “다 얘기하고 나니까 그동안 저를 짓누르던 게 없어졌다”며 “평생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았던 것 같은데 인생 이야기를 다 하고 나니까 여기가 가벼워졌다”면서 어깨를 으쓱 거렸다.
이어 “내가 나 자신을 누르고 있었구나 싶었다”며 “가난이 죄도 아니고 당시에는 다들 힘들게 살았는데 그걸 진작 털어놓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가난했던 기억과 함께 김 회장에게 남은 또 하나의 유산은 아버지가 강조했던 ‘정직’이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의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양보하지 않았던 원칙이다.
김 회장은 “아버지에게 배운 게 하나 있다. ‘가난해도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그게 어려서부터 머릿속에 박혀 있었고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똑같이 지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특히 식품기업은 소비자가 생산과정을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제조사가 스스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제품 안에 들어가는 원료의 유통기한이 지났는지 소비자는 알 수 없다”며 “그러니 식품을 만드는 사람이 정직해야 한다. 법대로, 원칙대로 해야 하고 불법이나 편법을 쓰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이 원칙은 다시 아들에게 이어진다. 김 회장의 아들인 김준후 푸드코아 대표는 2020년 입사한 뒤 약 1년 동안 자신이 회장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생산직으로 근무했다.
공장 직원들과 똑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생산라인에 섰다. 식품 제조현장에서는 보기 드문 젊은 남성이 무거운 물건을 척척 대신 들어주자 함께 일했던 아주머니들 사이에선 인기도 좋았다고 했다.
부자가 외모까지 닮은 만큼 정체가 드러날 법도 했지만 생산현장에서는 모자와 마스크, 위생복을 갖춰 입어 알아본 사람이 없었다. 김 대표는 1년 뒤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 뒤에야 ‘회장 아들’이라는 사실이 직원들에게 알려졌다고 했다.
김 대표가 생산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것도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정직’이었 다. 김 대표는 “바닥은 항상 아주 깨끗하게 관리됐지만 그래도 바닥에 떨어진 빵이나 식재료는 모두 버렸다”며 “유통기한이 조금이라도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솔직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아버지가 직원들에게 늘 정직하게 제품을 만들라고 강조했는데 그 철학이 현장 직원들에게까지 전해져 있었다”며 “그런 모습을 직접 보면서 많이 배웠고 지금도 아버지에게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구로공단 노동자였던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친 ‘정직’은 소년공 출신 기업인의 경영원칙이 됐고 이제 다시 2세 경영인에게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 회장은 “회사가 작고 자금 사정이 어려울수록 편법의 유혹이 생길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럴 때 원칙을 지켜야 기업이 오래갈 수 있다”며 “아들에게도 항상 정직하게 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당장은 손해처럼 보여도 소비자는 언젠가 알아준다. 우리 직원들도, 아들도 그렇게 회사를 이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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