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청년 20명 중 1명 “친한 친구 없다”…12년새 5배
혼자 사는 일상 공유하는 ‘외로움 인플루언서’ 확산
“밖에 나가도 모두 휴대폰만”…사라지는 일상의 만남
전문가 “청년 외로움 증가 단정 어려워…관계기대 변화도”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나는 친구가 없어.”
영국 런던에 사는 22세 테스 라반다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의 제목이다. 한 달 전 게시된 이 영상은 조회수 50만회를 넘어섰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도 ‘스물두 살 생일을 혼자 맞이했어요’, ‘런던에서 혼자 살기’, ‘이번 여름 혼자인 것도 괜찮아요’ 등 혼자 보내는 일상을 담은 영상이 잇따라 올라왔다. 수천명이 영상을 시청하고 댓글을 남기며 자신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친구가 없는 삶을 숨기기보다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솔로맥스’, ‘외로움 인플루언서’, ‘친구 없는 감성’ 등의 표현과 함께 혼자 보내는 일상을 공유하는 콘텐츠가 확산하고 있다. 혼자 사는 삶을 낭만적으로 꾸미는 영상도 있지만,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현실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공감을 얻는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도 자리 잡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라반다는 “사람들이 드디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돼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혼자 있는 것을 부끄럽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문화 때문에 아무도 용기를 내어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라반다는 원래 친구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고립감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그는 “진정한 우정의 부재가 정말로 절실하게 느껴졌다”며 “이야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어느 날 밤 혼자 외출하려다 두렵고 끔찍한 기분이 들어 카메라를 켰다. 처음에는 영상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만든 영상이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올렸다.
라반다는 “비판받고 괴롭힘당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반응은 압도적으로 긍정적이었다”며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해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사는 삶이 미학적이거나 낭만적으로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다만 자신의 영상은 친구가 없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더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이 주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영국에서 발표된 청년들의 우정 실태 조사와도 맞닿아 있다. 공공정책연구소(IPPR)의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영국에서 친한 친구가 없다고 답한 젊은이의 비율은 2014년 이후 5배 증가해 현재 20명 중 1명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맺고 있는 친구 관계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응답도 늘고 있다.
다만 친구가 적다는 사실과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가 과거보다 실제로 더 외로워졌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친구의 숫자뿐 아니라 우정에 대한 기대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졌다고 느끼는 배경에는 소셜미디어와 정신건강 문제, 팬데믹, 경제적 불안정 등이 복합적으로 거론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어느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영국의 아동·청소년 외로움 전문가인 파멜라 퀄터는 젊은이들이 기본적인 사회적 기술을 연습할 수 있는 장소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처음부터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경험에서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퀄터는 “우리는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과 나누는 그런 소소한 대화가 정말 부족하다”며 “재택근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무료 또는 저렴한 장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가처분소득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인과의 가벼운 상호작용을 뜻하는 ‘약한 연결’이 견고한 우정을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고 설명했다. 동네 가게나 직장, 학교, 지역 모임에서 나누는 짧은 인사와 대화가 사회적 기술을 익히고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기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라반다 역시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려는 의욕이 부족한 것 같다”며 “게다가 밖에 나가도 다들 휴대폰만 보고 있어서 다가가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경제적 불안정도 관계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엑서터대의 마누엘라 바레토 사회·조직심리학 교수는 최근 연구의 초점이 정신건강 악화나 자존감 저하 같은 개인적 요인에서 사회·경제적 구조 요인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레토는 “취업이나 첫 집 마련 같은 모든 게 지금은 정말 너무 어렵다”며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지만, 이런 어려움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고 좋은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단체 UK유스의 교육·개발 담당자 조디리 포스터는 친구 관계의 질도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셜미디어와 단체 채팅방에서 형성된 관계가 순식간에 괴롭힘이나 희롱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결과 젊은이들이 오히려 고립되고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일부 청소년들은 학교 밖에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교통비조차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 불안감이 커지면서 사람이 많은 공간에 머무는 것을 힘들어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포스터는 “사람들은 젊은 시절이 걱정 없이 자유로운 시기이고 세상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하기 쉽다”며 “하지만 어떤 젊은이들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너무나 벅차고 두려운 일일 수 있다. 젊은 시절은 정말 힘든 시기”라고 말했다.
퀄터는 영국에서 14~24세 청년들이 가장 높은 수준의 외로움을 보고하지만, 이는 과거에도 나타났던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쩌면 우리가 우정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친한 친구가 적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런 상황에 만족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sj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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