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0~11일 낭독극 ‘새’ 한국 초연
아비뇽서 한국인 첫 공연 이어 두번째
원작 ‘작별하지 않는다’ 1장만 다뤄
처음이라 긴장…이자벨 유연함 배워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상하다. 이렇게 너랑 같이 눈을 보니까.” (‘새’ 중 인선의 대사)
지난 7월 한여름의 프랑스. 세계 ‘공연예술의 심장’ 아비뇽 페스티벌의 상징인 교황청 중정엔 700년 석벽 아래로 폭설의 기억이 내려앉았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한강 작가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 1부 ‘새’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이 문장이 이혜영의 입을 통해 공기를 감쌌다.
병실 창문으로 나리는 흰 눈을 바라보며 뱉은 인선의 말은 그저 ‘이상한’ 기상 변화를 의미하진 않는다. 인선에게 눈은 침묵이자 부재이며,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슬픔의 무게다. 제주의 매서운 칼바람에 섞여 내리던 그 눈은 목공 일을 하다 손가락이 잘린 인선의 환부를 옥죄는 존재이자 지워지지 않는 학살과 통증을 품은 진혼의 매개체다.
무대 위엔 눈송이 하나 날리지 않았지만, 배우 이혜영(64)은 모국어로,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73)는 프랑스어로 허공의 눈발을 응시했다. 보이지 않는 눈보라를 함께 맞으며 같은 심연을 건넌 시선의 교차가 이뤄진 순간이었다. 한국 배우 최초로 교황청 중정에 선 이혜영은 그 순간을 이렇게 돌아봤다.
“우리가 만들어낸 이 창작 에너지, 낯선 이방의 언어가 음악처럼 혹은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었을 거예요.”
프랑스 아비뇽 무대를 마친 이혜영은 오는 내달 10~11일 서울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다. 제26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통해서다. 아비뇽에서 함께 한 이자벨 위페르 역시 이 무대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이혜영은 한국 초연을 앞두고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새’는 문학의 문장을 음성으로 운반하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라며 “소설의 1장만 다루기에 역사적 장면보다는 두 친구의 우정과 연약한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다”고 말했다.
전쟁 같던 ‘강박’…위페르 “뭘 그리 완벽하게 하려 해?”
무대에 오르기까진 처절한 고립의 시간이었다. 낯선 야외 공간, 감정을 불어넣어야 하는 역할, 프롬프터와의 거리. 대배우 이혜영에게도 아비뇽과 두 언어가 교차하는 낭독극은 미지의 세계였다.
그는 “사실 그렇게 큰 무대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며 “시력이 안 좋아 프롬프터의 위치와 거리를 예측할 수 없었고,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많이 지쳐있었다. 서울에서부터 이미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혼자 고민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이혜영을 중압감에서 꺼낸 건 이자벨 위페르와의 만남이었다. 한국과 프랑스의 두 걸출한 배우는 아비뇽으로의 출국 전 홍상수 감독의 집에서 처음 만났다.
“(이자벨이) 공항에서 트렁크 하나 들고 감독님 집으로 왔더라고요. 매니저도 없어요. 그게 너무 멋있어서 ‘이게 프랑스 스타일인가’ 싶었죠. (웃음) 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어떤 경우에도 내 몫은 하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갔는데, 이자벨은 대본을 딱 한 번 읽고 왔더라고요.”
두 배우의 무대 전 준비 과정은 완전 딴판이었다. 위페르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참석차 방한했을 당시에도 두 사람의 화두는 ‘새’였다. 위페르는 그때에도 대본은 한 번 읽고, ‘눈의 피로’로 인해 녹음해 듣는 방식을 택했다.
“오히려 저한테 ‘어차피 낭독극인데 왜 그렇게 완벽하게 하려 하느냐’고 되묻더라고요.”
위페르와의 작업은 이혜영에게 영감이 됐다. 스태프들과 유기적으로 소통하며 무대를 완성해 나가는 유연함이 눈에 들어오면서다.
“프롬프터 화면의 배치를 변경하거나, 한국어 대사가 끝나는 지점마다 문장 색을 바꿔 달라며 스태프를 부려 먹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아무도 괴로워하지 않아요. 모든 짐을 혼자 짊어져 고립된 길을 가던 저와 달리 이자벨은 함께 일하는 사람이었어요. 같이 하는 작업에 대해 더 많이 배우게 된 시간이었어요.”
첫 리허설은 밀폐된 방에서 진행됐다. 2000석 야외무대에 서는 것과는 또 다른 딜레마가 이혜영에게 찾아온 때였다. 공연 사흘 전 아비뇽에 도착해 매일 리허설을 진행했지만, 첫 리허설은 그가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이다.
“인선과 경하가 콩죽을 끓여 먹으며 학창 시절의 가출 이야기,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담담히 이야기하는 대목이었어요. 감정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같은 감정이었고, 심지어 울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는 무대에서 그 감정이 한 번도 똑같이 나오지 않았어요.”
줄리 들리케 연출은 단순한 낭독을 넘어 인물의 고통에 침잠하는 연기를 요구했다. 이혜영은 그날의 감정을 억지로 찾거나 짜내지 않았다. 그는 “그날그날의 공기에 맞춰 할 뿐인데 그 감정이 아닌 상태로 2000명 관객 앞에서 소리를 지르려니 감정이 안 맞았다”며 “한국 공연에선 모국어라는 장점에 감정 전달이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당초 아비뇽에선 한강 작가가 작품의 마지막 대사를 낭독했으나, 한국 공연에서 이 부분은 빠진다. 그래서인지 이혜영은 “아비뇽 때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강 선생이 읽었을 때 좋았던 이유는 그 부분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라며 “한강 선생은 그걸 아주 담백하고 감정 없이, 냉정하게 힘을 주지 않고 읽는다. 앞으로 누가 들어와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고 봤다.
“서구적? 난 지극히 조선적인 여자”
프랑스는 그에게 오랜 사유의 터전이자, 마음에 품은 동경이었다. 이혜영은 “예전에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써놓고, 그걸로 왜 제가 프랑스를 좋아했는지를 풀어놓은 적이 있다”며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처럼 결혼은 안 했지만 50년 가까이 함께한 커플들 때문에 프랑스를 좋아했는데, 정작 그런 프랑스 사람을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다”고 돌아봤다. 파리에서 2년간 생활한 그에게 프랑스는 낭만과 동경 이면에 새겨진 외로움의 흔적이었다.
“한국에선 저를 두고 ‘서구적’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저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30년 전인 1995~96년 아비뇽에 처음 왔을 때는 이방인에 대한 동경과 궁금증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오히려 제가 굉장히 동양적인, ‘조선적인’ 여성이라는 걸 느껴요.”
최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KBS2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오드리’ 캐릭터가 밈(meme)으로 소비되며 이혜영도 재소환되고 있다. 그는 과거의 드라마가 무한 반복되며 지금도 살아있는 것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기록되지 않는다는 점인데, 드라마는 그때의 제가 아닌데도 ‘나잖아’ 하면서 살아있어요.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오드리도, 최근 작품들도 사랑받는 것은 감사하지만, 제가 살아온 궤적과 살고 싶은 날들은 그보다는 훨씬 깊다고 생각해요. 다만 판단은 관객의 몫이죠. 저를 어떤 형태로 기억하든요.”
영구히 박제돼 떠도는 과거 대신, 호흡과 함께 타올라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휘발성과 현전(現前)을 향한 선언이다. 그가 걷는 배우의 길은 이 삶을 택한 그의 이유와 맞닿아 있다.
“제가 배우가 된 건, 이 일을 하면 행복해질 것 같아서였어요. 영화를 보면서 꿈꾸지 않으면 현실이 너무 고달팠으니까요. 저처럼 여전히 꿈꾸는 사람들의 꿈이 되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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