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비트플래닛 대표
헤럴드경제가 디지털자산 정책, 기술, 시장을 둘러싼 전문 식견을 담은 ‘크립토 인사이트’를 선보입니다. 디지털자산 시황, 글로벌 최신 이슈 및 제도권 편입 흐름 등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현안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제공합니다. ‘크립토 인사이트’는 복잡한 시장 구조를 명쾌하게 이해하고 디지털자산의 미래 가치를 가늠하는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산업의 기준과 방향성은 현장에서 먼저 성과를 내며 안착한 선도 기업들의 문법을 바탕으로 구체화해 왔다. 신산업 분야에서 제도와 표준은 애초부터 완벽한 이론으로 설계되기보다, 시장에서 먼저 검증된 성공 모델을 참고하며 정립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4년 쿠팡 ‘로켓배송’은 소비자의 소비 패턴과 이용 방식을 바꾸며 생활물류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렸고, 이는 전자상거래 발달과 맞물려 2021년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의 바탕이 됐다. 금융권에서는 2017년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출범 후 모바일 금융이 대중화되며 2018년 ‘인터넷전문은행법’이 제정됐다.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가 공개한 충전 규격(NACS)은 주요 완성차 기업들의 연이은 채택을 거쳐 미국자동차공학회(SAE J3400)의 공식 표준으로 발전했다. 이들 사례는 시장에 먼저 자리 잡은 혁신 모델이 기존 관행을 바꾸고 이후 제도와 기술 표준 형성의 중요한 이정표가 됐음을 보여준다.
한국 자본시장의 디지털자산 분야 역시 확고한 기준 정립이 시급하다. 코스닥 상장 유지 시가총액 기준이 지난 7월 200억원으로 상향된 데 이어 300억원 상향 시점도 내년 7월로 1년 남짓 남아 체질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나, 본업 없이 단순 가상자산 보유에만 의존하는 기업은 시장 변동성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상장사와 전문 투자법인 등의 투자·재무 목적 실명계좌 허용이 지연되고 명확한 공시 기준이 부재해 시장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필자는 현장에서 적어도 네 가지 기준을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첫째, 본업을 뒷받침하는 ‘실질적 사업 자산 비중’이다. 둘째, 가상자산 매입·운용 재원에서 ‘영업현금흐름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셋째, 가상자산 가격 변동과 무관하게 금융비용과 고정비를 감당할 ‘본업 중심의 현금창출력’이다. 넷째, 취득 단가와 수탁기관, 자산 보관 및 온체인 검증 체계까지 투명하게 밝히는 ‘공시 체계’다.
이러한 기준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MSCI가 2026년 8월 발표한 ‘비영업기업’ 지수 편입 적격성 검토안은 운영자산 비중을 확인하는 ‘코어 스크린’을 필두로 영업현금흐름, 비용 집행, 외부 자본 의존도를 종합 평가한다. 글로벌 자본시장 역시 단순 자산 보유가 아닌 ‘본업의 영업 기반과 현금창출력’을 핵심 잣대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비트플래닛의 지향점도 이와 맞닿아 있다. 디지털자산 트레저리의 지속가능성은 비트코인 보유량 자체가 아닌 이를 받쳐주는 실물 사업 기반에서 나온다. 비트플래닛은 기존 시스템통합(SI) 사업으로 영업 기반을 유지하며, 최근 1204대의 채굴 설비 양수를 완료해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채굴은 고밀도 전력 조달과 수랭식 냉각 등 고성능 인프라 운영 역량을 축적하는 출발점이다. 비트플래닛은 이를 바탕으로 향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AIDC)뿐 아니라 AI 에너지 인프라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정부와 국회도 생산적 금융과 가상자산 2단계 입법 논의를 주요 정책 과제로 이어가고 있다. 제도는 백지상태에서 갑자기 만들어지기보다 현장에서 검증된 구체적 사례를 바탕으로 정교해진다. 본업에 기반한 인프라 역량과 투명한 공시로 체력을 증명하는 기업이 늘어날 때, 향후 시장과 제도가 참고할 유의미한 성공 사례가 축적되고 한국 자본시장의 생산적 금융 전환도 가속할 것이다.
kyo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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