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드 다이아몬드 신작 ‘리더는…’

역사의 흐름 바꾼 리더들 집중 분석

개인vs시대…대립 아닌 기회에 주목

아돌프 히틀러. [게티이미지]
아돌프 히틀러.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1930년 아돌프 히틀러를 태운 자동차 쪽으로 트럭이 돌진했다. 트럭은 탑승자들을 덮치기 직전 멈춰 섰고, 히틀러는 3년 후 독일 총리가 돼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일으켰다. 그날 트럭이 자동차를 덮쳤다면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지 않았을까. 아니면 당시 독일의 상황이 또 다른 히틀러를 만들어냈을까.

‘총, 균, 쇠’에서 문명을 지리적·환경적 조건으로 설명했던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7년 만에 낸 신간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에선 개인으로 시선을 돌린다. 정치, 기업, 스포츠, 종교를 가로지르며 역사의 흐름을 바꾼 리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파고든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 역사를 바꿨다는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사관’이나 리더들을 ‘역사의 노예’라고 칭한 레프 톨스토이의 정반대 견해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차이를 만들었나’를 살핀다.

저자는 리더의 대체 가능성을 판별하는 분석 틀로 ‘햄릿 테스트’를 이용한다. 셰익스피어가 없었어도 ‘햄릿’이 나올 수 있었을지와 같이 어떤 역사적 성취가 특정 개인만이어서 이룰 수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도 가능했는지를 가늠하는 사고 실험이다.

보츠와나의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는 햄릿 테스트를 통과한 대표적 사례다. 1966년 독립 당시 보츠와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였지만, 이듬해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자 부국이 됐다. 당시 카마는 다이아몬드로 얻은 부가 특정 부족에 집중되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관리·배분하는 제도를 구축했다. 그 결과 보츠와나는 빈곤과 내전을 피하고 풍요와 안정을 누리게 됐다.

반면 찰스 다윈은 대체 불가능한 인물로 평가되지 않는다.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가 거의 같은 시기에 자연선택설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다윈이 없었어도 진화론은 나왔을 것이란 분석이다.

햄릿 테스트로 판별하기 어려운 경우엔 ‘자연실험’을 빌려 온다. 정치 지도자를 겨냥한 암살 시도, 최고경영자(CEO)의 갑작스러운 죽음, 질병, 가족과의 사별 등 의도치 않은 사건에서 비롯된 차이를 관찰하는 것이다.

저자가 경제 성장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현대 국가 지도자들과 부정적 영향을 미친 지도자들을 분석한 결과, 국가의 경제 성장은 민주적 지도자의 사망보다 독재적 지도자의 사망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재자가 더 큰 ‘재량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시기에 재능을 발휘한 리더들도 있다. 윈스턴 처칠, 샤를 드골, 오토 폰 비스마르크 등은 적절한 때를 기다렸고, 그 순간을 인지했다. 인기 없는 결정을 내리는 용기나 끈기도 성공한 리더의 여러 특징 중 하나다.

기업으로 무대를 옮기면 리더의 영향은 생각보다 제한적으로 평가된다. 여러 연구자들은 최고경영자(CEO)가 회사 수익 변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5~29%로 분석했다. 아무리 뛰어난 CEO라도 쇠퇴하는 산업을 되살리기는 어렵고, 평범한 CEO도 급성장하는 시장에선 뛰어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등 세상을 바꾼 기업 리더들도 햄릿 테스트를 통과한 경우는 아니다.

스포츠는 리더의 영향력이 강조되는 또 다른 분야 중 하나다. 팀 성적이 부진하면 감독부터 교체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기업의 CEO처럼 스포츠 감독 역시 팀 성공에 미치는 영향은 21~3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독을 해고한다고 해서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고, 유능한 감독이 부임하더라도 초반에는 성과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종교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에 의해 창시된다. 그런데 새로운 종교가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창시자만으로 충분치 않다. 유능한 조직가와 경제적·인구학적 동력도 필요하다. 기독교가 세계 최대의 종교가 된 데에는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가능했다.

저서는 흔한 리더십 책과 결이 다르다. 성공하는 리더의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공식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여준다. 어떤 리더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상황을 찾아낸 뒤, 그 기회를 잡은 사람이 왜 X였고 Y가 아니었는지를 들여다본다.

결국 저자가 그려내는 역사는 ‘위대한 개인’과 ‘거대한 구조’의 대결이 아니다. 시대는 개인이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개인은 그 범위 안에 존재하는 여러 가능성을 각기 다른 형태로 현실화한다.

한 사람의 성격과 능력이 시대의 요구와 맞아떨어지는 순간 리더의 영향력은 극대화된다. 반대로 비슷한 역량을 가진 사람도 어떤 기회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좋은 리더를 찾는 것만큼이나 리더가 실제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세계적인 학자의 새로운 방법론은 기업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접하는 여러 리더를 어떻게 평가할지, 리더십은 언제 발휘될 수 있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게 만든다.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김주헌 옮김/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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