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최근 엘리엇의 요구는 경영권 침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삼성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최근 엘리엇의 지배구조 개편 요구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와 맥을 같이 하면서, 과거 헤지펀드들이 보여왔던 ‘경영권 침해’와는 상반된 행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향후 엘리엇의 제안으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이 삼성에게 유리한 쪽으로 마무리 될 경우, 기존에 재계에서 ‘악’으로 규정되던 헤지펀드에 대한 시각 역시 긍정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의 공개 서한이 공개된 이후 이틀간(6~7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5.37% 상승하며 종가기준 사상 최고가(170만6000원)를 기록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지난 5일 삼성전자 지분 0.62%(76만218주, 1조2855억원)를 보유한 블레이크캐피탈과 포터캐피탈 등 엘리엇의 자회사들이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삼성전자 지주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할 것’을 제안한 이후였다.

엘리엇은 ‘270억달러(약 30억원)의 특별 배당금을 지급, 잉여현금 75% 이상의 주주 환원, 사외이사 추가‘ 등도 제안했지만, 이들 제안에 대해 삼성전자가 실행으로 옮기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시장의 관심은 지배구조 개편 방안에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헤지펀드(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지배구조 개편 요구가 과거 한국의 사례와 달리 독특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그룹 입장에서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지배구조 개편 방식을 제안해, 경영권 승계ㆍ유지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상 기업이 원하지 않는 ‘경영권 침해’ 성격의 요구가 잦았다.

지난 2003년 4월 ‘소버린 사태’는 외국계 자본이 국내 재벌의 지배구조에 개입하며 경영권을 흔든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소버린 자산운용은 SK(주) 주식 14.99%를 매입해 2대 주주에 오른 이후 ‘계열사 청산, 경영진 교체,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했다.

최태원 회장 등 SK그룹 경영진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에서 1조5587억원에 이르는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적발됐고, JP모건과 옵션 이면계약을 체결해 회사에 1112억원의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검찰 수사와 재판이 받을 때였다.

이듬해 1월에는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1조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되자, 당시 소버린은 유죄 선고를 받은 이사들이 여전히 이사회에 남는 것은 문제삼으며 SK의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려 했다.

미국의 유명한 기업사냥꾼인 칼 아이칸이 2006년 2월 KT&G의 지분 6.59%를 매수하며 경영권에 개입한 것 역시 ‘경영권 침해’의 주요 사례로 꼽힌다.

당시 아이칸은 ‘부동산과 계열사 주식 매각, 자사주 매입 등으로 주주 몫을 늘려 달라’고 요구했다.

2005년까지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로부터 2년 연속 ‘기업지배구조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는 KT&G의 경영에 개입하자 시장에서는 ‘먹튀’ 외국자본이 건전한 기업을 뒤흔든다는 비판적 시선이 나왔다.

삼성물산 역시 과거 두 차례 경영권 위협을 받았다.

2003년 11월에는 헤르메스가 당시 삼성그룹 내 삼성물산 지분이 가장 많은 삼성생명(4.8%)보다 많은 주식을 무기로 ‘삼성전자 보유지분(3.4%) 매각, 삼성카드 증자 불참, 삼성물산 우선주 소각 매입’을 요구하는 등 경영 간섭에 나섰다.

지난해 6월 초에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 1112만5927주(지분 7.12%)를 장내 매수하며 삼성물산의 1대 주주 국민연금을 비롯 삼성SDI 등 주요 주주들에게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합병 반대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엘리엇의 요구가 향후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이 될 경우 외국계 헤지펀드에 대한 재계의 시각도 변화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부터 대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헤지펀드 세력을 재계는 ‘악’으로 규정해 왔다”며 “엘리엇 덕분에 삼성전자의 경영권 승계가 성공하게 되고, 삼성전자의 주가가 적당한 수준에서 고공행진을 지속해 삼성에게 결국 유리한 게임이 되면, 헤지펀드에 대한 기존의 인식 역시 긍정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기대가 한층 강화되면서, 삼성전자 매수를 지속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오너일가의 지배력 확대라는 명분이 충분해졌다”며 “엘리엇과 삼성전자의 관계가 갈등이 되기보다 지배구조개편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 삼성전자 비중을 대폭 확대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ra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