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 긴장감 속에 돌아가던 시계가 올해는 딱 멈춰버린 느낌이다. 나라가 온통 ‘최순실 블랙홀’에 빠지면서다.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1월 17일) 시계가 9일 앞을 가리키고 있지만, 60만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제외하곤 별무관심이다. 입시관련업체들도 이렇게 수능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은 적은 없었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한 수험생 학부모는 “가장 중요한 때 나라가 뒤숭숭하니 아이도 나도 힘들다. 빨리 수능이 끝나기만 바랄 뿐이다”고 한숨쉬었다.
입시공화국의 하일라이트인 수능 시즌도 최순실 사태 앞에선 흥행 실패다. 사상초유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탓이 가장 크다. 막장드라마보다 더 기함하게 만드는 각종 에피소드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온다. 다른 채널, 다른 이야기로 눈돌릴 새가 없다.
더 큰 이유는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갖가지 특혜 의혹들이 수험생들에게 열패감을 안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3 때 출석일수 193일 중 28일 출석. 그러고도 문제없이 졸업했고 졸업식 땐 공로상까지 받았다. 평가대상이 안되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대학에선 출결과 과제 제출 등을 멋대로 하고도 학점을 받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교수들이 나서서 정씨의 리포트를 도와주고 비정상적인 특혜를 베풀었다.
정씨의 모습에 수험생들은 맥이 빠진다. 대학입시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꿈꿔왔던 명문대는 비리 집단처럼 매도되고 있다. 국가정책 중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입시가 정씨 의혹 속에 부정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불공정한 방법으로 각종 이권을 차지한 이들, 그리고 이를 눈감아준 사회에 대한 분노가 수험생들의 집중력과 목표의식을 떨어뜨릴 우려가 크다”고 했다.
236만명의 고교생 회원들이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 ‘수만휘’에는 “수능이 열흘 밖에 안남았는데 나라가 이러니 책이 손에 안잡힌다” “비록 우리가 말 타고 대학에 가진 못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을 거에요” 등 절망과 위로의 글들이 넘쳐난다. 수험생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혼란스러운 시국을 헤쳐나가고 있는 중이다. 아흐레 남은 수능은 최순실 정국에 묻혔다. 수험생들의 꿈까지 함께 묻혀선 안된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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