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법원이 13일 진경준(49) 전 검사장이 서용원 한진그룹 대표를 압박해 처남이 운영하는 회사의 일감을 타낸 것은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서 대표가 명확하게 말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그룹 총수의 내사사건을 막 종결한 진 전 검사장에게 ‘그룹에 불이익이 없도록 해달라’는 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본 것이다. 진 검사장의 이 혐의는 박 대통령이 기업들을 압박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타냈다는 혐의와 닮아있어, 향후 특별검사팀의 수사 좌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진동)는 13일 진 전 검사장이 한진그룹을 압박해 처남이 운영하는 용역업체의 일감을 타낸 혐의(제3자뇌물수수)에 대해 “(두사람 간)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서 대표는 재판과정에서 “진 전 검사장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을 뿐 부정한 청탁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당시 정황과 증거를 종합해 서 대표가 부정청탁을 했다고 봤다. 진 전 검사장이 내사를 종결한 뒤 언제든 수사를 개시할 수 있었던 점, 내사를 종결한 처분과 처남회사의 용역계약 체결이 가까운 시일 내 이뤄진 점, 진 전 검사장이 처남의 청소용역업체 설립에 관여한 점 등이 고려됐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판결에 비춰봤을 때 박 대통령과 최 씨가 기업을 압박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수백억원을 출연케한 혐의도 제3자뇌물수수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업들이 거액을 출연한 시점과 과정을 보면 충분히 대가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있었고, SK는 구속된 최태원 회장의 사면에 힘쓰고 있었다. 롯데는 형제 간 경영권 갈등과 뒤이은 검찰 수사등 현안이 쌓여있었다. 기업들이 현안을 해결해달라는 부정청탁과 함께 재단에 돈을 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기업총수들은 지난 6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대가를 바라고 출연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뇌물죄를 입증하는 데 돈을 건넨 당사자 진술이 필수는 아니라고 법조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결국 뇌물죄 입증을 위해서는 기업들이 청와대에 출연을 약속하며 어떤 청탁을 했는지 특검 수사로 밝혀내야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당시 기업들이 정부정책과 관련해 가지고 있던 현안, 대통령이 이에 미칠수 있는 영향력, 기업들이 대가를 바라고 돈을 냈을 것이라는 정황을 특검이 꼼꼼히 살펴야 한다”며 “청와대가 국민연금에 삼성 합병 찬성 표결을 지시했다던지 구체적인 물증을 잡으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미르ㆍK스포츠재단 관련 부분은) 뇌물이냐 제3자뇌물수수냐의 문제”라며 “특검 수사를 통해 박 대통령이 재단의 이익을 향유했다는 점이 밝혀지면 제3자뇌물이 아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진 전 검사장이 김정주(48) NXC 대표에게 받은 공짜주식 등 금품이 ‘뇌물’이 아닌 ‘선물’에 가깝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최 씨가 박 대통령에게 4500만원 상당 옷과 가방을 사줬다는 의혹에 대해 뇌물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7일 국회 청문회에서 ‘최 씨가 대통령의 옷과 가방제작을 요청하고 값을 치렀다’는 진술이 나오면서, 뇌물죄 논란이 불거졌다. 청와대는 곧바로 이에 대해 “옷값을 박 대통령이 지불했다”고 반박한 바 있다.

서초동의 A변호사는 “최순실 씨의 경우 진 전 검사장 사례보다 박 대통령에게 민원, 청탁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이 많다“면서 “두 사람의 직무 관련성, 대가성 등을 입증하지 못하면 ‘선물’이라는 판결이 나오는 것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고 했다.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우선 최 씨가 대통령의 옷값을 대납했는지 사실을 규명해야 한다”며 “또 최 씨가 대통령의 옷값을 지불한 기간과 각종 청탁을 한 기간이 겹치지 않고 광범위하다면 옷값을 친분관계에 따른 선물이라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어보인다”고 했다.

반면 검찰 출신 B변호사는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때는 대가관계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필요없이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된다는 판례가 있다”며 “최 씨가 사비를 들여 대통령의 옷값을 지불했다면 곧바로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