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남자’ 이미지로 광고계 접수 팬클럽 ‘아니의 군대’ 구름 갤러리

1958년 ‘아멘코너’ 만들며 화제 메이저 우승컵 7번 들어올려… ‘조종사 꿈’ 55년간 2만시간 비행도

올해 지구촌 체육계 가장 큰 이슈메이커는 현존하는 선수가 아니라 지난 9월26일,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아놀드 파머였다.

미국 ‘골프채널’은 최근 ‘올해의 뉴스메이커 톱10’을 발표하면서 아놀드 파머를 가장 앞에 놓았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골퍼이자 골프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다는 의미가 부여됐다. 2위는 리우 올림픽, 3위는 도널드 트럼프였고, 타이거 우즈는 9위에 그쳤다.

파머는 선수 매니지먼트의 효시가 됐다. 변호사인 마크 맥코맥이 그의 스타성을 포착, 스포츠마케팅 회사 IMG를 설립하고 파머를 인간적이고 믿음직한 이웃 남자 이미지로 구축해냈다. 이후 파머는 캐딜락, 롤렉스 등 광고에 단골 출연했다. 음료수 ‘아놀드 파머’는 연 3억 캔 이상 팔린다.

파머는 1958년 마스터스 첫승을 거둘 때, 이 골프장 11~13번 홀을 ‘아멘(Amen) 코너’로 재탄생시킨다. 비가 오는 중에 12번홀(파3)에서 날린 파머의 티샷이 그린 위 언덕에 박혔고 볼을 꺼내 드롭한 파머는 5타를 적어야 했다. 선두를 한 타 차 추격하는 상황에서 파머는 13번 홀에서 극적인 이글을 잡아낸다. 경기가 막바지에 치닫는 시점, 경기위원회가 볼이 박히면 무벌타 드롭을 허용한다고 밝히자 파머는 “아멘”을 외쳤다. 스포츠 주간지 SI가 한 재즈밴드의 ‘Shouting at Amen Corner’라는 곡명에 빗대어 파머의 파란만장 3개홀을 아멘코너로 명명했다.

파머의 팬클럽인 ‘아니의 군대(Arnie‘s Army)’도 마스터스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대회 흥행을 위해 골프장 주변 군부대원를 공짜로 입장시켰다. 공짜손님 군인들은 골프를 잘 몰랐다. 그래서 가장 잘하는 선수를 따라다녔는데, 바로 디펜딩 챔피언인 파머였다. 그는 1958~1964년 2년 간격으로 4번 우승했고, 경기를 따라다니는 군인은 매년 늘어났다. 나중에는 일반 갤러리도 ‘아니의 군대’로 불렸다.

‘디오픈’은 파머에 의해 세계 최고 반열의 대회가 됐다. 1960년 디오픈 101주년을 맞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대회에 파머가 출전한다. 파머는 그해 마스터스와 US오픈을 연달아 우승하면서 남아있는 메이저를 정복할 목표로 죽어있던 디오픈을 찾은 것이었다. 그때까지 영국과 아일랜드만의 지역 대회이던 디오픈은 파머가 출전하자 메이저로 관심을 받았다. 파머는 그해 한 타 차이로 우승을 내주었지만 이듬해 2년 연속 우승하면서 디오픈 우승컵 클라렛저그를 들어올렸다. 파머의 메이저 우승은 총 7번이다.

파머는 점잔 빼던 골프를 변모시켰다. 입에 담배를 물고, 셔츠자락은 삐져나왔으며, 장갑을 꽉 낀 채 바지를 추켜올려 성큼성큼 걷는 모습은 품위가 거리가 있는 듯 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왕(the King)’이라 불렀다.

은퇴 후 그는 세계 25개국에 300곳 이상의 골프장을 만들었다. 어릴 적 꿈인 조종사를 해보려고 시도했고 55년간 2만시간 비행 기록까지 남겼다. 그가 말년에 살던 펜실베이니아 라트로브의 공항은 ‘아놀드 파머 리저널’ 공항이 되었다. 영웅은 죽어서 전 세계에 이름을 남겼다.

남화영 기자/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