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단군 이래 최대 국난으로 기록된 1990년대 말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위기 극복의 경제사령탑 역할을 했던 정통 경제관료이자 영원한 ‘정책브레인’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강 전 장관은 암 투병을 하던 최근까지도 당장의 활력과 미래의 경쟁력을 동시에 잃어가는 나라경제를 걱정하며 후배들은 물론 정치ㆍ경제지도자들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신념과 의지의 경제인을 떠나보내는 후배들의 마음은 더욱 안타깝다.
그는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서울대 상대에 입학했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 강한 추진력으로 노동부 차관과 경제기획원 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거쳤고 김대중(DJ) 정부 시절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경제수석, 재경부 장관 등 경제관련 요직에 중용됐다. 특히 전대미문의 외환위기로 나라경제가 사실상 파산한 상태에서 사령탑을 맡아 재벌 개혁, 부실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 위기극복을 진두지휘했다.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후인 2002년 8월 재보선에서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권에 발을 내디뎠고, 이어 17~18대에도 의원으로 당선돼 정책통이자 경제전문가로 입법활동과 행정부 감시활동을 벌였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후보의 경제 분야 공약을 주도했고, 이후 개각 때마다 경제부총리 후보로 하마평에 끊임없이 오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고향인 군산대 석좌교수, 재정 건전성을 지키고 무책임한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건전재정포럼의 대표를 맡으며 경제 원로로서 활동해왔다. 지난해 4·13 총선 당시에는 새누리당에 입당해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냈고, 경기 대응을 위해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담보대출증권, 산업은행 채권을 직접 인수하는 내용의 ‘한국판 양적완화’를 화두로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11월말에는 1990년대말 외환위기의 전개ㆍ극복 과정을 당시 경제수장들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한 ‘코리안 미러클 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출판보고회에 참석해 나라경제를 걱정하고 후배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당시 “정치적 안정이 지금 가장 중요하다. 정치적 불확실성만 제거하면 예전의 잠재력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암투병 와중에도 이 책의 편찬위원장을 맡았으며, 전 부총리와 재경부 장관 등이 참석한 이날 출판보고회가 그의 마지막 공식 외부활동이 되고 말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서혜원(71) 씨와 아들 문선(43)씨, 딸 보영(42)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3일 오전 7시, 장지는 전북 군산 옥구읍 가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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