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의 ‘적’(敵)은 몇가지가 있다. 우선 세월이다. 이 점에서는 여배우의 적과 걸그룹의 적은 동일하다. 그 다음은 독보적인 속성을 막는 이미지와 켄셉트의 겹침 현상이다.

세월이라 함은 물리적 나이듦만이 아니다. 이미지 노화를 막아야 한다. 걸그룹은 다음 세대가 출현하면 선배들은 가만히 앉아서 3~4년 나이를 먹는 구조다. 23세인 수지도 걸그룹 연륜으로는 고참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미지 노화를 막을 수 있도록 최대한 ‘이미지 세월 지연 작전’을 구사해야 한다.

데뷔 7년차 에이핑크는 이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한가지 색깔을 밀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실험을 할때도 이 한가지, ‘청순’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걸그룹은 트렌드 민감성이다. 섹시함이 유행할 때는 노출이 필수적이다. 소품으로 ‘봉’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급기야 음악 프로그램 PD가 노래 부를 때 걸그룹에게 허용되는 자세를 발표하는 촌극도 나왔다. 또 여전사, 걸크러시가 유행할 때는 이를 빨리 쫓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작전은 당장에는 임팩트를 낳을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가면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폭삭 나이들어 보이게 된다. 이미지를 마구 써먹었기 때문이다.

에이핑크는 ‘청순’과 ‘순수’만을 택한 게 이미지 고착의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녀적인 감성을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아무래도 댄스보다는 발라드가 더 잘 어울리는 에이핑크는 춤을 추더라도 조금 다르게 와닿는다.

2012년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춤을 춘 정규앨범 타이틀곡 ‘허쉬(Hush)’는 성공적이었지만 다른 걸그룹들도 할 수 있는 시도였다. 에이핑크에게는 ‘노노노’ ‘미스터 츄’ ‘러브’ 처럼 청순 발랄한 노래가 더 잘 어울린다.

에이핑크는 귀엽고 청순하며 샤방샤방하기까지 한 트와이스 같은 어린 후배들이 나오고 강한 이미지를 주는 동료선배 걸그룹들 사이에서 어떤 포지셔닝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최상의 선택을 했다.

이번에 발표한 여섯번째 미니앨범 ‘핑크 업’(Pink Up)의 타이틀곡 ‘파이브(FIVE)’과 초롱이 작사한 발라드곡 ‘아이즈(EYES)’도 에이핑크와 잘 어울린다. 에이핑크는 ‘청순돌’ 이미지가 우선이라 나은, 하영, 남주가 섹시함도 어울릴 수 있음에도, 청순을 우선시한다고 했다.

“나중에 섹시함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섹시를 컨셉으로 하는 선배들이 많은데, 우리가 굳이 이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 우리가 어울리는 부분을 고집하겠다”(오하영)

“청순함 안에서 어떤 변화를 주고,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파이브’는 작곡가 신사동 오랭이 오빠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음악적으로 조금 성숙한 느낌이다.”(정은지)

“실력이 많고 다양한 개성 있는 팀들이 많이 나와 어려움이 있다. 저희 팀에게 새로운 것을 원하면서도 색깔이 변하는 것은 원하지 않더라. 이 생각, 저 생각이 있지만 원래 색깔을, 그리고 우리가 가장 잘 하는 색깔을 보여주자고 했다.”(박초롱)

그래서인지 ‘파이브’라는 결과물은 만족할만하다. 신사동 호랭이와 함께 했던 '러브' 시절의 초심에서 변화를 준 것 같다. 춤도 매우 예쁘다. 원투스리포파이브의 포인트 안무는 특히 귀엽다. ‘파이브‘의 뮤직비디오는 (에이핑크에게는) 약간의 파격인, 핑크와 블루 두가지 색상의 의상을 보여주지만 사이사이 청순의 오브제인 레이스 달린 옷과 꽃을 대거 활용했다. 조금 야할라 치면 바로 청순해지는 교차편집이다.

이번 음반은 ‘아이즈’나 ‘파이브’ 등의 보컬도 정은지와 보미 위주에서 골로루 배분됐다. ‘청순’을 주무기로 장착한 에이핑크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이미지 약화라는 약점은 버리고 정체성 강화라는 장점이 더 크게 부각되면서 후배 걸그룹 컨셉트 전략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병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