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전 세계적으로 수명을 다한 원전이 속속 늘어나면서 원자력발전소를 해체하는 ‘원전 해체 산업’이 새로운 블루오션(무경쟁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세계 각국에서 가동 중인 588개 원전 가운데 영구정지 원전은 150개다. 이 중 19개만 현재 해체가 완료된 상태다.
또 2020년을 전후로 1960~1980년대 지어진 원전 대부분이 설계기한을 다하게 된다. 2015년 이전 113기, 2015~2019년 76기, 2020년대 183기, 2030년대 127기, 2040년대 이후 89기 원전이 설계기한을 끝낸다. 이로써 2040년대 이후까지 총 216기 원전이 영구정지된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딜로이트는 전 세계 원전 해체 시장 규모를 440조원(2014년 기준)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원전 해체 경험이 있는 나라는 미국(15기), 독일(3기), 일본(1기) 등 3개국에 불과하다. 시장에선 미국을 제외하면 뚜렷한 선두 주자가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폭증하는 원전 해체 시장 수요를 감안할 경우, 우수한 원전기술을 보유한 우리나라가 도전해볼 만한 ‘블루오션’인 셈이다.
▶주요 원전 선진국, 원전 해체 시장에 눈독=미국·독일·일본 등 ‘원전 대국’들이 바라보는 원전해체 시장은 새로운 먹거리 시장이다. 세계적으로 원전 수요가 줄어 새로 원전을 짓는 것은 사양산업이 됐지만, 폐로 시점이 다가오는 원전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폐로 시장 규모가 2030년 500조원, 2050년 1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원전업계는 폐로 시장이 당초 예측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물가가 오르고 안전 기준이 강화될수록 원전해체 비용이 늘기 때문이다. 산업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추정한 원전 한 기당 폐로비용은 2003년 말 3251억원에서 2012년 말 6033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금액도 세계의 평균 폐로비용 6546억원에 못 미치고, 폐로 경험이 앞서 있는 일본(9590억원)·독일(8590억원)·미국(7800억원)의 추산 금액보다는 낮다는 점을 감안, 비용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또 세계원자력협회 자료에 따르면 원전발전량은 1965~1979년 사이 25.8% 늘어났지만, 2002~2010년 사이엔 0.3%로 감소했다. 산업적 각도에서의 시장 전망은 새 원전의 건설·수출보다 폐로가 더 유망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요 원전 선진국들은 앞다퉈 원전해체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가장 많은 100기의 상업용 원전을 운영 중인 미국에서는 에너지솔루션·PCI에너지서비스 등 원전 폐로·해체를 전문적으로 하는 민간기업들도 등장했다. 독일에선 웨스팅하우스·아레바 등 10여개 기업이 폐로 작업을 하고 있으며, 폐로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만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 내각부와 경제산업성은 아예 지난달 초 2011년 원전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지역을 “세계가 주목하는 폐로산업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후쿠시마 지역 부흥과 폐로산업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후발주자 한국, “더 이상 늦으면 안 된다”=지난 6월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영구정지되면서 원전해체 관련 기술확보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원전해체는 방사선 안전관리, 기계, 화학, 제어 등 여러 분야의 첨단 기술이 복합된 종합엔지니어링 분야로 꼽힌다. 고방사성 환경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고도의 제염(除染), 철거기술, 원격제어기술 등이 필요하다.
산업부는 이 같은 기술개발을 관리하기 위해 전문가와 지역 의견 수렴을 거쳐 올해 하반기에 원전해체 기술연구소 추진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 연구소는 해체에 직접 사용되는 상용화 기술개발은 물론 원천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실증 연구도 맡을 전망이다. 산·학·연 간의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해체 기술개발을 조정하는 컨트롤타워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전력기술은 원전해체산업과 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신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한전기술은 원자력본부 산하에 원전해체사업실을 신설하고 원전해체와 방사성폐기물, 사용후연료 등 원전 사후관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영구 정지된 고리 1호기 해체산업 참여를 통해 원전해체 비법을 축적하고 해외 원전해체 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한전기술은 이미 2015년 독일의 프로이센일렉트라사와 원전해체 기술전수 협약을 체결해 관련 기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한국수력원자력은 현재 원전 해체에 필요한 58개 기술 중 41개를 확보한 상태다. 고리1호기의 본격 해체에 돌입하는 오는 2022년까지 5년 동안 나머지 관련 기술 확보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종설 한국수력원자력 팀장은 “현재 해체 선진국 대비 80%인 상용화 기술 수준을 조만간 100%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며 “고리 1호기 해체에 필수적인 11개 해체 장비에 대해서도 2027년까지 단계적 개발을 완료해 해체현장에 투입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osky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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