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불황 때 ‘초격차 전략’표방 선제 투자 -총수부재·美 통상압력…호실적 불구 위기론 -초대형 투자 ‘올스톱’…미래 불확실성 확산 삼성전자가 지난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도리어 삼성 내에선 ‘위기론’이 심상찮게 거론된다. 미래전략실 해체와 함께 드러난 그룹 컨트롤타워 부재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 발동 예고 등 거세지는 대외 통상압력에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의 맹추격, 4차산업혁명으로 요약되는 산업의 대변혁 등 대외 여건은 악화일로다. 하지만 총수 부재의 여파로 과감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임직원 모두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 실적발표 하루 전인 지난 12일에도 2심 항소심 재판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지난 2월 구속 이후 총수 부재의 상황이 장기화되는 데 있다. 명멸을 거듭하는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5년이라는 선고기간은 기업 생사를 가르기에 충분하다. 이는 이미 삼성전자의 역사에서도 여실히 증명된 바 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08년 4분기 삼성전자는 충격적인 74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었다. 당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휘청일 때였다.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모두가 움츠릴 때 삼성은 역으로 공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2009년 신년 연휴 당시 삼성전자 이윤우 대표가 조용히 승지원을 찾아 이건희 회장을 만나고 돌아온 뒤 그해 2월 ‘초격차 전략’을 전격 선포했다. 삼성은 2년에 걸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23조원 이상 쏟아부었다. 그해 독일 반도체업체 키몬다는 파산했고, 삼성은 치열한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아 11조원의 영업이익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5년 전인 2012년도 삼성의 운명을 가른 한 해였다. 당시는 반도체 불황으로 세계 3위였던 일본의 엘피다가 무너질 때다.
서초동 사옥으로 매일 출근한 이건희 회장은 ‘초격차 확대’를 주문했다. 2위와의 기술 격차를 더 크게 벌려 압도적 1위를 차지하자는 주문이었다. 그해 삼성은 ‘갤럭시S’로 벌어들인 영업이익 29조원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투자에 집중 투입했다.
이어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1년 만인 2015년 5월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경기도 평택 고덕산업단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누리는 ‘반도체 수퍼호황’의 황금기가 이때 뿌려진 투자의 결실이다.
이런 삼성 반도체의 기적은 그룹 총수의 중대 결단과 계열사의 자율 경영이 조화를 이루며 달성됐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반도체 수요 폭발을 예견한 최적의 투자였다. 하지만 지금의 삼성은 10년 후 또 다른 기적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윤부근 사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삼성그룹을 대규모 선단, 이 부회장을 선단장, 자신을 선단을 구성하는 어선의 선장으로 비유하면서 “저희(각 부문장)가 사업 구조 재편이나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 배가 가라앉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과감한 의사결정은 최고경영자(CEO) 선에서 나올 수 없다. 그룹 총수가 미래 생존을 담보할 먹거리를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는 건 주지의 사실”이라며 “현재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문(DS)의 초호황 또한 과거 이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인데, 총수 부재로 이같은 도전을 못하고 있어 미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의 투자 시계는 멈춰 있다. 반도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적 시설 투자에 그치는 실정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11월 미국의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전문기업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후 올 들어서는 대형 M&A 발표가 단 한 건도 없다. 영업익 50조원을 벌어놓고도, 이대로 한 해가 갈 판이다. 미래 먹거리 발굴에 사활을 걸었던 삼성전자의 공격적 성향은 이 부회장 기소 이후 소극적 방어로 변모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그룹 총수의 과감한 선행 투자와 수년 후 이를 실적으로 증명받아 온 성공의 경험치를 가진 조직”이라며 “총수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삼성만이 가진 성공 DNA 자체가 사라지고, 이는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순식 기자/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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