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보팅 27년만에 폐지 소액주주 주주권 새롭게 조명
기관투자자, 기업의사 결정 참여 주주환원책·기업지배구조개선 기대
지난 1991년 ‘경영효율성’이라는 명분으로 도입된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 ‘섀도보팅’이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폐지된다. “주총 대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상장사의 우려를 반영해 금융위원회 TF(테스크포스)가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국민연금이 내년 하반기에 도입할 ‘스튜어드십코드(기관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두고 ‘주주권리 신장’ 기대감과 ‘연금 사회주의’ 우려가 부딛히고 있다. 이같은 ‘주주권 격변기’에 헤럴드경제는 최근의 흐름이 주주문화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봤다.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내년부터 섀도보팅이 폐지되고,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는 등 주주권을 둘러싼 환경이 변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바뀐 시장환경에 발맞춰 상장사, 소액주주들의 의식도 한 단계 성숙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주주들은 ‘단타매매’에서 ’장기투자‘로, 상장사들은 ‘대주주 우선’에서 ‘주주와의 소통’으로 시선을 돌릴 때라는 지적이다.
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상장사협의회 등은 주주총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이다. 섀도보팅 폐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축제와 같은 주총’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내년 1월 말까지 업계 의견을 수렴한 후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 전에 대비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섀도보팅은 주총에 불참한 주주의 의결권을 찬반 비율대로 대리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이달 말을 끝으로 시행 27년 만에 폐지된다. 상장사들은 의결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주들에게 주총 참여를 독려하거나 의결권 위임을 권유해야 한다. 오랜 기간 홀대받았던 소액주주들의 주주권이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기관투자자들의 주주권 행사도 활발해질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내년 하반기부터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겠다고 지난 1일 밝혔다. 현재 한국투자신탁운용과 하이자산운용, 메리츠자산운용 등 15개 기관이 참여를 결정한 상황이다.
제도의 효용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여전하지만, 일단 주주권리의 도약 측면에서는 기본 토대가 확보됐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강명헌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택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회사 경영이 주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향후 주주는 불합리한 경영에 제동을 걸고 재벌의 횡포를 견제해 회사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뀐 제도적 환경에 맞춘 주주와 상장사의 의식개혁이 향후 과제로 꼽힌다. 회사의 사업계획과 성장 로드맵에 대한 충분한 이해없이 단순히 차익실현만을 노리고 주주권을 외치는 풍토가 주주 의식개혁의 대상이라면, 소액주주들을 ‘자금조달처’로만 여기고 기관투자자 유치에만 치중해 ‘정보비대칭’을 초래하는 투자환경은 상장사 의식개혁을 통해 개선해야 할 과제다.
우선 주주의 의식개혁과 관련해서는 장기투자 문화의 안착이 대안으로 꼽힌다. ‘오늘 사서 내일 팔자’는 식의 투자자에게는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회사 측에 변화를 촉구할 권리가 없다. 이런 투자자들의 비중이 많은 회사일수록 주주의 요구에 둔감해지고, 정작 회사와 장기 비전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주주들은 점점 소통에서 소외된다.
송민경 기업지배구조원 정책연구본부장은 “단기투자 위주의 투자 분위기는 비단 개인투자자들뿐만 아니라 기관들 사이에서도 만연해 있다”며 “이들이 장기투자로 방향을 틀어 회사와 시너지를 내도록 하는것이 핵심적인 이슈”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다만, 개개인의 투자성향을 바꾸게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제도적 변화 등을 통해 장기투자에 대한 유인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장사의 체질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ㆍ중견 상장사 중 대다수는 기업설명회(IR)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기관투자자에 편중된 관행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참가 대상이 기관투자자로 제한된 기업설명회의 경우 공시되지 않은 예상 매출, 사업변경 계획 등 내부정보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현행법 준수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안조차도 무시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대주주만의 이익이 아닌 기업 전체 가치를 향상시키는 경영원칙부터 자리잡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스튜어드십 코드를 기반으로 향후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기관투자자들이 주주 및 상장사의 의식개혁을 주도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회사의 경영 방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결국 그만큼의 의결권이 규합된 기관투자자들이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장기적으로 움직이는 방법 외에는 없다”며 “의결권이 수익률 극대화라는 원칙 아래 외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이 행사됐다는 것을 여타 주주들에게 설득시키는 작업만 선행된다면, 장기적으로 회사와 소액주주, 기관 등 세 주체의 이해관계가 한 곳을 향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관투자자들이 수백 개에 달하는 기업 경영전략을 모두 꿰고 있을 수는 없다는 점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같은 의결권 자문기구”라며 “이미 국내에서도 기업지배구조원과 같은 기구들이 의결권 자문 역할을 하고 있지만, 관련 사업 영역이 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경수ㆍ최준선 기자/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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