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산업 규제 방식 대폭 완화하기로 -안전성 확인된 의료기기에 ‘포괄적 네거티브’ 적용 -65억달러 시장 곧 100억달러로 확대 전망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생명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지원하겠다. 의료기기 산업의 낡은 관행과 제도,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지난 19일 열린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 육성’ 발표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표자로 나섰다. 정부는 규제 혁신의 첫 대상으로 의료기기 분야를 선택했다. 의료기기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 각종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대표적인 4차 산업혁명의 분야다. 이번 의료기기 산업에 대한 정책 변화는 문 대통령이 직접 발표를 할 만큼 현 정부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성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기기 분야 뿐 아니라 모든 산업계에서 이 변화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선(先)진입 후(後)평가 방식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적용=이 자리에서 발표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에 따르면 그동안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형 신산업의 하나로 의료기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을 해왔다.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규제기간을 단축했다.

하지만 의료기기 분야의 빠른 기술 발전은 따라가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의료기기는 국민이 건강을 위해 사용하는 기기라는 점에서 정부 규제가 크게 작용하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의료기기는 국민 건강과 연관되는 산업이기에 개발 이후 시장에 진입하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최대 520일까지 소요된다.

특히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신의료기술’인 경우 시장 진입은 더 까다롭다. 식약처의 의료기기 허가 이후에도 복지부 신의료기술평가위로부터 새로운 의료기술이 인체 부작용은 없는지, 치료 효과는 우수한지 등을 검증받아야 한다. 이 기간만 280일 정도 걸린다. 하지만 정부는 앞으로 안전성 우려가 적은 의료기술(의료기기)의 경우 우선 시장 진입을 허용한 뒤 사후 평가라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인공지능(AI), 3D 프린팅, 로봇 등을 활용한 미래유망 혁신ㆍ첨단의료기술이 최소한의 안전성이 확보된 경우 우선 시장진입을 허용한 후 임상현장에서 3~5년간 사용해 축적된 임상 근거를 바탕으로 재평가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첫 대상으로 혈액, 분변 등으로 이용해 질병진단을 예측하기 위한 체외진단기기의 경우 신의료기술 평가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에 체외진단기기의 경우 1년 넘게 걸리던 시장진입이 80일 정도로 대폭 단축된다.

▶빠른 시장 진입으로 국산 의료기기 경쟁력 향상 기대=정부는 이번 규제 개혁이 국산 의료기기의 기술력을 높여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의료기기 분야는 각종 규제에 발이 묶여 경쟁력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19일 발표에서도 문 대통령은 “그동안 의료기기는 개발보다 허가와 기술평가를 받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며 “허가를 받기 위해 여러 정부기관을 찾아다녀야 했는데 이 비효율적인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실제 국내 병원에서조차 국산 의료기기는 외면받는 실정이었다. 국산 의료기기의 국내 병원 점유율은 60%가 채 되지 않는다. 의료기관들은 국산 의료기기의 기피요인으로 제품 성능 부족이나 브랜드 인지도 부족 등을 들고 있다. 실제 국산 의료기기 기술 수준은 최고기술을 보유한 미국과 3~4년 정도의 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보통신, AI,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이 발전했고 이를 의료기기에 적용하는 시도가 많지만 이보다 더 어려웠던건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허가 단계였다”며 “이런 네거티브 방식 도입은 분명 의료기기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성장동력 얻은 의료기기 시장, 100억달러 시장 곧 온다=정부의 이런 규제 완화 정책은 의료기기 시장의 확대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7년 국내 의료기기 시장은 62억달러 규모로 파악됐다. 지난 2013년 46억달러에서 5년 만에 16억달러가 증가했다. 의료기기 관련 업체 수도 지난해 3283곳으로 처음 3000곳을 돌파했다. 국산 의료기기 품목 수 역시 1만4800여개로 1만5000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업계 종사자 수는 5만7600여명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의료기기 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토양은 부족하다. 정부는 우선 ‘의료기기산업육성법’ 제정을 통해 산업 육성을 위한 법적ㆍ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복지부는 “의료기기 산업은 높은 부가가치율과 고용유발 효과를 가지고 있고 특히 혁신적인 기술이 도입된 의료기기가 등장하면서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 의료기기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의료기기법만 있을 뿐 체계적인 산업 육성을 위한 법과 제도의 뒷받침이 부족했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65억달러를 넘은 의료기기 산업은 정부의 법과 제도 지원에 힘입어 곧 100억달러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특히 규제가 풀리면서 해외수출이 늘어나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의료기기 산업에 대한 규제 변화는 다른 산업에서도 관심있게 지켜보는 장면이다. 성공할 경우 타 산업군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겠다고 선언한 뒤 첫 케이스이다보니 이것이 성공이냐 실패냐는 다른 산업에도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할 것”이라며 “산업쪽에서는 이번 의료기기 규제 완화 정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