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기적 지정감사제ㆍ표준감사시간제 “의아하다”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회계 논란은 장기적으로 감사위원회 기능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규제당국의 과도한 개입은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리비아 커틀리<사진> 전(前) 국제회계사연맹(IFAC) 회장은 지난달 29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해 최근 지속되는 국내 회계 이슈를 두고 이같은 의견을 밝혔다. 한국공인회계사회와 회계학회 주최 세미나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커틀리 전 회장은 130여 년 역사의 미국공인회계사회(AICPA)에서 첫 여성 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현재 미국과 영국의 글로벌 기업 3곳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으며 ‘감사위원회 분야 국제 전문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회계는 수학이나 과학처럼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기업의 ‘회계 추정치’를 볼 때도 ‘수치 결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게 아니라, 외부감사인(회계법인)과 회사 감사위원회의 논의 과정을 두루 살피면서 기업 내부 의사결정이 적절한 ‘견제와 균형’ 속에 이뤄졌는지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감사위원회가 회계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고 경영진에 반론을 제기하며 리스크를 관리했는지’, ‘회계 부정과 관련된 내부 신고 시스템이 있는지’ 살피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커틀리 전 회장은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그는 “감사위원회를 위한 매우 구체적인 독립성 기준을 우선 명문화해야 한다”며 “회사 내부 감사(재무회계 부서)와 외부감사(회계법인) 담당자들이 ‘경영진을 배제한 채’ 감사위원들과만 얘기하는 구조를 갖추는 게 경험상 독립성 유지에 매우 효과가 있었다”고 조언했다. 또 “제조업 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제조업 전문가를 감사위원으로 두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하는 위원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다만 ‘감사위원들이 회계와 재무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요건은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변화하는 회계환경에선 감사위원회가 ‘공시와 관련된 감독’에도 철저히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커틀리 전 회장은 “대부분의 미국 기업은 ‘경영공시위원회’를 두고 있다”며 “경영공시와 관련해 분기마다 만나 중대한 사항을 논의하고 회사의 중요 문제가 실제로 공시됐는지 살피는 것도 감사위원회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최근 금융당국은 ‘주기적 지정 감사제’(회사의 6년 자율 감사 수임 이후 3년 지정 감사)와 ‘표준감사시간제’(적정 감사 시간을 부과하고 수임료를 현실화하는 제도)를 두 축으로 외부감사법을 개정, 대대적인 회계 개혁을 진행 중이다. 이에 커틀리 전 회장은 ‘감사위원회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한 법 개정’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전반적 제도 변경에 대해선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감사위원회의 기능이 배제된 ‘당국 중심의 규제’가 오히려 ‘감사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주기적 지정 감사제’에 대해 “외부감사인이 자주 교체될 수 있는 제도”라며 “감사인이 자주 교체되면 회사 이해도가 떨어지는 회계 감사가 진행될 수 있고, 산업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한다는 것도 위험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표준감사시간제’에 대해서는 “외부감사인에게 적정한 수임료를 제공하는 게 감사 품질 제고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그런데 감사시간이란 것은 개별회사마다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데, 감사위원회와의 소통없이 어떻게 외부에서 ‘표준적인(Standard) 감사시간’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 진행되는 회계 개혁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금융당국이 기업과 회계업 종사자들의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렴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애초 취지에 부합하는 개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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