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소유와 경영의 분리’ 확산 기조에 주목 - 반기업정서 등 부정적 시선과 막대한 책임감, 과도한 상속부담 등 풍선효과 분석도 - “전문경영인 체제 단기 실적주의 함정 있는 만큼 오너가 퇴진 평가는 좀 더 신중해야”
[헤럴드경제=정순식 기자] 재계에 이른바 ‘오너’들의 퇴진이 잇따르고 있다.
작년 11월 이웅열 코오롱 그룹 회장이 전격적으로 그룹 회장직 퇴진을 선언한 데 이어, 국내 바이오업계의 신화적 인물로 꼽히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는 등 재계에 오너들의 은퇴 바람이 불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소유와 경영의 분리’의 흐름이 재계 전반으로 점차 확산돼 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전반에 드리운 반(反)기업정서와 상속세등 실질적인 문제에서 부담을 느낀 오너가들이 이른바 전문경영인 체제를 택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서정진 회장은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셀트리온이 우리나라 바이오의약품 분야의 중요한 산업군으로 자리매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오는 2020년 말 미련 없이 은퇴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서 회장은 그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 화두를 꺼내들었다. 은퇴 후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아들에게는 이사회 의장을 맡겨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작년 11월에는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파격적으로 그룹 회장직을 내려놓으며 재계 전반에 파문을 던졌다.
당시 그는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 창업의 길을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약속대로 이달 1일부터 그룹 회장직을 비롯해 지주회사 ㈜코오롱과 코오롱인더스트리㈜등 계열사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이 회장 퇴임 후 코오롱그룹은 지주사를 중심으로 한 각 계열사의 책임 경영 체제가 뿌리내리고 있다. 그룹의 컨트롤타워는 주요 계열사 사장단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성격의 ‘원앤온리(One & Only)위원회’를 두고 그룹의 정체성과 장기 경영방향, 대규모 투자, 계열사간 협력 및 이해 충돌 등 주요 경영 현안을 조율하고 있다.
서 회장과 이 전 회장의 은퇴선언은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으로 넘기는 데서 맥을 같이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오너들이 전권을 휘두르던 기존의 경영 방식을 벗어나 글로벌스탠다드의 이사회 중심의 경영에 대한 변화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최고투자책임자(GIO)가 네이버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고 나서 작년 3월 네이버 등기이사직 또한 내려놓고 글로벌 투자업무에 전념하고 있는 것도 같은 흐름의 사례로 꼽힌다.
한편으로는 팽배한 반(反)기업정서 속에 오너들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시선과 대기업 규제, 사정당국의 잇따른 압박, 과도한 상속부담 등이 오너가들의 퇴진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이웅열 전 회장은 퇴임사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느꼈다.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듯한데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내려 놓는다”며 그룹 총수로서의 부담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바이오업계의 해묵은 과제인 분식회계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온몸으로 견뎌내며 셀트리온을 이끌어 왔으며, 게임업체 넥슨 매각을 검토한 창업주 김정주 NXC 대표 또한 고교 동창인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넥슨 비상장 주식을 준 혐의로 2년여 간 검찰과 법원을 오가며 적잖은 마음고생을 해야만 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암묵적으로 오너가를 홀대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옹호하는 사회적 압력이 있어 왔다”며 “다만 전문경영인 체제는 단기 실적주의에 빠지는 함정이 있는 만큼 오너가들의 퇴진에 대한 평가는 좀 더 신중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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