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업 상황 및 이해상충 방지방안 공시해야” -“의안분석 방법론, 기관투자자에게 공개할 필요 있어“ -“의안분석 담당자 공개ㆍ자문에 대한 기관투자자의 평가시스템 필요”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국내 자본시장에서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스튜어드십코드 준수를 위해 의결권 행사 방향을 자문하는 의결권자문사들의 공정성, 전문성 등을 담보하는 제도는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요 외국계 의결권 자문사의 경우 이해상충 우려 요소를 밝히고 의안 분석 과정도 일정 부분 공개하도록 각국 법률이나 업계 자율규제안을 통해 규제받고 있다. 이제 막 성장기에 돌입한 국내 자문사에 강력한 규제 장치를 적용하긴 어렵지만, 최소한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조언이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국내 의결권자문사 관련 현황 및 향후 과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주주총회 의안을 분석해 기관투자자에게 자문을 제공하고 수익을 얻는 기관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 & Co.)와 같은 외국계 기관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하 KCGS), 대신경제연구소, 서스틴베스트가 있다.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매년 2만건 이상의 주주총회 의안을 분석하는 글로벌 1, 2위 의결권자문사다. 이들 기관은 15년 넘게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외국기관투자자들에게 의결권자문서비스를 제공해 평판을 쌓아왔다. 서구에서는 의결권자문사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돼 왔는데, 그 결과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이해상충 방지 방안 마련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의결권자문사에 대한 규제 강화 안을 포함한 금융선택법안이 미국 하원을 통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계 기관과 달리 국내 의결권자문사는 의안분석 업무 수행 경력이 7년 미만으로 상대적으로 짧아, 아직 자문 역량을 평가할만한 시장의 평판이 확립돼 있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의결권자문사와 관련된 별도의 규제나 감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의결권자문 내용의 공정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조영은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조사관은 “대부분의 의결권자문사는 의결권자문업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기관이므로 고액을 제공하는 기관에 유리한 의결권 자문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또한 기관투자자에 대한 의결권 자문과 기업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경우, 다른 금융서비스를 겸영하는 경우 등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으나 이를 방지할 방안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의결권자문 내용의 정확성이나 투명성을 확보할 방법도 부족하다. 국내 의결권자문사의 인력은 한정돼 있지만, 주주총회는 매년 3월 말까지 약 1900건 이상 개최되는 등 집중도가 높다. 조영은 조사관은 “의결권자문사는 다수의 주주총회 안건을 단시간에 분석해야 하므로 정보처리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의결권자문사가 주주총회 의안을 분석할 때 사용하는 데이터나 해당 데이터 처리 방법론이 공개돼 있지 않아, 기관투자자로서는 의안 분석에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의결권자문사의 전문성이나 역량을 담보할 최소한의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조영은 조사관은 “의안 분석 담당자나 해당 담당자의 관련 법률에 대한 지식수준, 관련 경력 보유 여부가 공개되지 않아 전문성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별 의결권자문사가 보유하고 있는 전문 인력의 수 및 1인당 얼마나 많은 회사의 안건을 분석하고 있는지에 관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의결권 자문사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 의결권자문사에 대한 투자자문사 등록을 강제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투자자문사로 등록할 경우 ‘1940년 투자자문업’ 상의 여러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또 증권거래위원회(SEC) 지침을 통해, 의결권자문사에게 이익상충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관계 및 분석대상 안건에 대해 의결권 자문사가 갖는 중대한 이익을 공시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EU의 경우 의결권자문사들이 자율협약을 통해 마련한 모범규준과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코드가 의결권자문사를 규율하고 있다. 모범규준에 따르면 의결권자문사는 자문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 의안 분석 방법론을 공개해야 한다. 또한 의결권자문사는 이해상충 방지를 위해 서비스 제공과 관련한 잠재적ㆍ실제적인 이익 상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를 마련해 투자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의결권자문사는 주식 발생회사, 의안 찬성자와 같은 이해관계자와 주기적으로 의사소통해 의안분석 및 검증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입법조사처는 의결권자문사들이 겸업 상황 및 이해상충 방지를 위한 방안을 공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영은 조사관은 “의결권자문사와 관련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상충 문제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의결권 자문내용의 공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겸업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개별 회사의 성장 측면에서 과도한 제한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겸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기 보다는 겸업 상황 및 이해상충 방지 정책을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안 분석의 방법론을 기관투자자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안했다. 물론 구체적인 분석 틀을 기관투자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회사의 영업상 주요 정보를 노출할 수 있다는 면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 조영은 조사관은 “의결권자문시장의 성장과 의안분석의 정확성 제고 사이의 균형을 적절히 고려해, 의결권행사에 대한 대략적인 지침 및 구체적인 의안분석에 사용된 데이터를 사후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의안분석 담당자를 공개하거나, 사후 공개된 의결권자문에 대해 기관투자자가 엄격히 평가하는 시스템이 도입될 필요성도 제기된다. 조영은 조사관은 “별도의 진입 장벽은 두지 않되 의결권자문사에게 스스로 의안 분석 담당자의 수, 경력, 처리안건 수 등을 공개하게 하고 기관투자자가 이를 통해 의결권자문사를 선택하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관투자자에게 의결권자문사에 대한 주기적인 평가를 공시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주요 대형 연기금의 경우, 해당 기관의 의사결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적어도 2개 이상의 의결권자문사의 의견을 참고하도록 하고, 의결권자문사를 주기적으로 평가해 낮은 평가를 받은 회사는 교체하도록 하는 것이 의결권자문 시장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