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3분만에 129개 사진 조각 3D그래픽으로 -모션 기록하는 센서로 손가락 움직임까지 묘사

[헤럴드경제=박세정 기자] 오는 18일이면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 발생 한 달이 된다. 800년이 넘게 이어져온 역사의 흔적이 한순간에 불타 사라지는 모습에 세계인들이 상실감을 느꼈다.

그런데 최근 관련해서 흥미로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프랑스 정부가 대성당의 빠른 복원을 위해 유비소프트의 게임 ‘어쌔신크리드:유니티’ 속에 구현된 그래픽 데이터를 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이었다.

며칠뒤 알려졌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짜뉴스‘ 였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퍼져나온 ’설‘이 뉴스가 됐다. 유비소프트가 대성당 복원에 50만 유로를 기부하고, 성당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게임을 무료로 배포하기로 결정하면서 해프닝은 훈훈하게 마무리 됐다.

그만큼 게임속에 대성당의 내외부가 완벽하게 그래픽으로 구현되어 있다보니 일이다. 실제로 유비소프트는 게임속 성당의 구현에만 2년이 넘는 시간을 들였다. 실사 촬영은 물론 프랑스 건축 기록 보관소에 보관된 그림, 판화 등을 연구해 조각상 하나, 스테인드 글라스 하나까지 완벽하게 구현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상 현실’이 이번에는 ‘현실’을 되살리는 데 쓰일 뻔 한 것이다.

게임 속 그래픽은 이제 다음 단계로 가고 있다. 게임엔진과 그래픽 기술의 발달, 거기에 5G와 이를 기반으로 한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등의 첨단 기술까지 더해지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공간과 캐릭터들이 게임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이분야에 가장 앞서있다는 평을 듣는 곳이 바로 게임회사 ‘펄어비스’다. 펄어비스는 MMORPG게임 ‘검은사막’으로 출범 8년만에 업계 빅4의 자리에 올라섰다. ‘검은사막’의 현실같은 그래픽이 국내외 유져들을 빠르게 끌어들인 덕분이다. 그런 펄어비스 그래픽 기술의 심장부 역할을 하는 경기도 안양의 ‘3차원(3D) 스캔 스튜디오’와 ‘모션 캡쳐실’이다. 지난달 30일 이곳을 기자가 다녀왔다. 펄어비스가 언론에 이곳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스튜디오에 들어가자 처음 기자를 맞은 것은 거대한 철제 프레임으로 이줘진 원형 구조물이었다. 수십개의 옷걸이를 동그랗게 설치해 놓은 듯한 이 철조물에는 129개의 카메라가 360도로 촘촘히 장착돼 있었다. 펄어비스 관계자는 “중앙에 물건이나 인물을 놓고 360도 촬영해 3D로 구현하는 장치”라고 소개했다. 게임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물론 의상이나 검, 공룡, 소품 등의 기본 입체 디자인이 이곳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기자도 중앙 의자에 앉아 촬영을 해봤다. ‘찰칵‘ 소리와 동시에 129개의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터지는가 싶더니, 금새 그 모습이 두 대의 모니터에 입체로 구현됐다. 129개의 사진 조각들이 하나의 입체로 구현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분. 입고있던 치마의 주름까지 그대로 담겼다. 회사 관계자는 ”그래픽 렌더링 작업까지 거치면 1시간에 하나의 3D그래픽이 만들어진다“면서 “검은사막 속 캐릭터가 입었던 옷과 괴물도 이같은 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측은 “과거에 조소하듯 일일이 스케치 작업을 해야 했던 과정이 단 1시간으로 줄어들었다”라며 “실제 사물을 그대로 찍어 구현하기 외형은 물론 공간감까지 현실처럼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3D 스캔스튜디오는 국내 업체 가운데서는 펄 어비스가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이다. 이후 경쟁사 몇 곳이 비슷한 스튜디오를 열었지만, 시설의 퀄리티에서 펄어비스가 앞서있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모션 캡쳐실도 체험했다. 역시 지난 2014년 7월 펄어비스가 게임사 중 처음으로 구축해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펄어비스의 모션캡쳐실에서 본지 기자가 움직임을 기록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 모니터에 기자의 움직임을 그대로 묘사한 캐릭터가 실시간으로 생성된다.
펄어비스의 모션캡쳐실에서 본지 기자가 움직임을 기록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 모니터에 기자의 움직임을 그대로 묘사한 캐릭터가 실시간으로 생성된다.

3D모션 스튜디오가 외형의 생생함을 구현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팔동작, 다리 움직임 등 캐릭터의 모션을 정교하게 담아내는 곳이다. 배종국 아트실 팀장은 “실제 헐리우드 영화에서 배우들의 움직임을 그래픽으로 구현하는 것과 같은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기자도 검은색 촬영용 의상을 입고 체험해봤다. 검은 타이즈 의상위에 머리부터 손가락까지 ‘마크’라고 불리는 총 37개의 센서가 부착됐다. 이 마크들이 모든 신체의 움직임을 꼼꼼히 담아낸다. 게임 캐틱터처럼 칼을 휘두르는 동작을 취하자, 모니터 속 아바타가 기자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했다.

움직임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구현하는 것이, 캐릭터에 개성을 부여하고 사실감과 몰입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점프를 한 번 하더라도, 전사의 움직임과 몬스터의 움직임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배종국 펄어비스 아트실 팀장은 “캐릭터가 검을 손에 쥐고 휘두르는 와중에도 팔목의 각도, 양쪽 어깨의 위치 등이 미세하게 변한다. 이런 미세한 변화들을 현실감 있게 담아내기 위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검은 사막속 모든 캐릭터들은 모두 여기서 캡쳐한 움직임을 구현한 뼈대 위에 3D 외형을 입혀 완성한 것이다.

게임이 전점 고도화되고 다음 버전으로 진화하면서 더 사실적인 그래픽을 위한 노력은 더 강화되는 추세다. 실제로 검은사막 모바일의 최신 업데이트 캐릭터 ‘헌터’ 등은 초창기보다 더 많은 50개 이상의 센서를 부착해 모습을 구현했다. 활을 당기는 손가락, 팔꿈치의 움직임까지 더욱 정교하게 담기 위한 노력이다.

펄어비스가 준비하고 있는 신작 ‘프로젝트K와 ‘프로젝트V’에도 이같이 더 고도화된 그래픽 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

스튜디오 구축에는 당연히 수십억의 비용이 들었다. 그럼에도 당시 중소형사였던 펄 어비스가 비용을 들인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속 그래픽에 얼마나 현실감을 더하느냐가 앞으로 게임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광호 펄이비스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게임 콘텐츠는 하이퍼리얼리즘의 결정체”라며 “게임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몰입감이 고도화된 그래픽 기술로 현실화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