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사용계약하고 리모델링 거쳐 원주인에게로…지자체들 공유숙박 신청 이어져
4차산업혁명위 “스타트업 혁신해라” 말뿐인 구호…규제 샌드박스 2년뒤 불확실성 ‘희망고문’
“세상에 없는 것 만들라고 하지만 정작 해놓고 나면 정부는 법에 없는 것은 하지 말랍니다. 새로 나온 사업인데, 어떻게 법에 이미 규정되어 있겠습니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예요.”
덤덤하게 입을 열었지만 말에는 수개월의 시간 동안 여기 저기에서 치인 분노와 실망이 묻어 있었다. 남성준 다자요 대표는 3년간 공들였다 무위로 돌아간 ‘빈집 재생 프로젝트’를 돌아보며 국내 스타트업들이 부딪히게 마련인, 규제의 현실에 대해 조목조목 짚었다.
다자요는 ‘한국판 비앤비’를 모토로 출범한 스타트업이다. 에어비앤비는 집주인들이 잠시 비워둔 집, 내지는 ‘세컨드 하우스’를 숙박시설로 활용해 글로벌 유니콘으로 거듭났다. 남 대표는 2015년 ICT에 기반한 숙박 공유업에 도전하다 2017년 농어촌 빈 집을 활용한 모델을 착안했다. 농어촌의 빈집을 리모델링해 숙박시설로 변신시키는 안이다.
다자요는 집주인과 계약을 통해 10년간 빈집을 무상으로 쓰고, 집주인은 비워둔 집을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해주니 ‘윈-윈(win-win)’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계약한 10년이 지나 숙박을 유지하지 않더라도 리모델링으로 자산 가치가 높아진다. 여기에 소비자들은 최신 여행 트렌드를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는 이점이 추가된다.
최근 3박5일 등 정해진 일정으로 유명 장소를 ‘훑는’ 여행 대신 ‘한 달 살기’가 인기를 얻고 있는 배경에는 현지의 삶에 차분히 ‘녹아드는’ 여행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담겨있다. 이에 맞춰 숙박도 공장에서 찍어낸듯 비슷한 시설이 아닌 현지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곳이 인기다. 다자요의 빈 집 활용안은 이 같은 트렌드에 딱 맞는 조건이었다.
노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속출하는 빈 집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지방자치단체에도 다자요의 사업모델은 희소식이었다. 농어촌의 빈 집은 미관이나 치안상의 문제를 발생시킬 뿐 아니라 마을 전체의 생기를 앗아가는 골칫거리였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전국의 빈 집은 141만9617 가구. 2015년 106만8919가구였던게 4년새 32.8%나 증가했다. 사실상 폐가나 다름 없는 빈 집을 되살린다는 취지는 공유가치창출(CSV)과도 연결된다. 남 대표는 “고향 제주에 내려 갈 때마다 난개발 현장을 눈으로 보곤 한다. 관광객 모으자고 짓고 헐고를 반복하는게 ‘부동산 공화국’ 같았다”며 “제주 특유의 정취를 살린 집을 활용하면 자연도 보호되고, 마을에 생기도 돌지 않을까 싶었다”고 전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시장에서 먼저 알아봤다. 크라우드 펀딩 와디즈에서 빈 집을 활용한 공유 숙박을 제안하자 2억원의 투자 목표액이 단숨에 채워졌다. 지난해 4월 제주도 빈 집 2채로 시작한 사업은 금새 4채로 늘어났고, 가동률이 68%까지 올라갔다. 지자체마다 “여기도 빈 집 있소”하는 신청이 100여건이나 폭주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도시 재생 수준의 마을 리모델링을 의뢰하기도 했다.
지나친 유명세가 독이 되어 돌아온 걸까. 빈 집을 선뜻 내준 집주인이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농어촌 정비법 위반 신고가 들어온 것. 농어촌정비법 2조에 농어촌민박사업은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단독주택을 이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다자요에 해당하는 법령이 없었다. 기존 숙박업에 없던 모델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남 대표는 “숙박업 허가를 받으려 해도 호텔, 여관, 한옥 등 해당되는게 없다 보니 가장 비슷해보이는 농어촌 민박업을 생각했다”며 “집주인이 실제로 거주하지 않는다는게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궁여지책으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위원회에서 굉장히 좋은 혁신 모델이란 극찬이 쏟아졌다. 기대도 잠시 뿐, 이내 “좋은 모델인데, 법 위반이니까 안된다”는 말이 이어졌다. “숙박업 허가를 받고 하던지, 거주하는 사람을 넣어서 하라”는 권고도 나왔다. 빈 집 내준 주인들에게 “살아달라”고 부탁까지 해야 할 판이 됐다. “어렵다면 숙박업 하지 말고 그냥 임대업을 하라”는 중재안도 있었다. 다자요는 빈 집을 되살려 주인에게 돌려주는게 목표라고, ‘부동산 공화국’을 지양한다고 수차례 얘기해도 통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농어촌 한 복판에 ‘무인텔’을 허용할 수 없다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입장은 남 대표를 더 당황하게 했다. “무인텔이라는 말 대신 ‘스마트 스테이’ 같은 새로운 개념을 생각해보면 안될까요. 휴대폰과 사물인터넷(IoT)으로 각종 시설을 제어하고, 전문 보안업체가 치안을 관리하는 숙소입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답을 찾지 못한 남 대표는 지난해 10월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다. 새로운 형태의 숙박업이 도래했으니, 시대 흐름에 따른 규제를 만들어달라는 취지였다. 다음달 심사를 진행하는 규제 샌드박스는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건 다자요에 숙제를 안긴다.
“규제 샌드박스에서 다자요 모델을 인정해준다 해도 딱 2년간 보장되는 겁니다. 세상에 어느 기업이, 어느 투자자가 2년 보고 사업을 하나요. 2년 후에 지금같은 규제 불확실성이 다시 돌아올텐데.”
기존 빈 집 독채 민박은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투자자들을 위한 주주 별장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꿨다. 수익률, 회전률도 낮아진데다, 사업 절차가 더 복잡해졌다. “단순히 회원권을 사는 개념이 아니라 주주 별장이기 때문에 주식을 발행해야 하고, 상장기업이 아니니 주식을 사는 것도 쉽지 않아요.”
단순 공유숙박이 아닌 지역 재생으로 범위를 넓히려던 다자요의 계획은 규제 덕분에(?) 더 속도를 높이게 됐다. 남 대표는 “애초 계획은 숙박만으로 관광이 되지 않으니, 인근에 식음료 시설이나 관광 콘텐츠를 보강해 지역 재생으로 완성시키려 했던 것”이라며 “숙박이 막혔으니, 다른 사업모델부터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도 부산에서 문 닫은 조선소를 보고 왔다.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내색은 못하지만 지자체의 여전한 지지가 그나마 다자요의 ‘믿는 구석’이다. 스타트업들도 “이왕 워크숍 할 거면, 혹은 직원 복지용으로 쓸 거면 다자요를 쓰자”며 십시일반 한단다.
남 대표는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규제 샌드박스를 거치느라 다자요가 오히려 ‘희망고문’을 겪었다고 아쉬워했다. “스타트업들에 혁신해라, 세상에 없던 것 만들어라 하는데 정작 만들어내면 해외 사례 있냐고 물어봐요. 왜 해외에서 먼저 해본 것만 찾나요? 당국에서는 신사업과 기존 사업간 갈등을 조절하는게 아니라 이해당사자를 데려와 싸움을 붙입니다. 싸움 지켜보다 ‘법에 없으니 하지 말라’는 얘기만 내놔요. 결국 스타트업들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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