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밴드‘ 아이돌스’멤버…37년만에 정규앨범 내는 이형기
군부대 돌며 신들린 연주…미8군 스카우트 1977년 솔로 첫 앨범 ‘머물래’발표 후 잠적 키보디스트인 아들 이환과 함께 작업 “새 노년 알리는 시작이자 음악 친구들과의 재회” 올 연말까지 전국 연주 여행 계획
강원도 산골 소년은 뭐든 입으로 부는게 좋았다. 국민학교 시절, 사촌 누나가 부는 하모니카를 손에 넣은 소년은 콩대 다발 속에 들어가 해저무는 줄 모르고 불었다.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절로 멜로디와 화음이 흘러나왔다. 소년은 금세 불지 못하는게 없을 정도가 됐다. 중학생이 된 소년은 밴드부에 들어가 클라리넷을 끼고 살았다. 어느날 읍내 극장쇼를 보러 갔다가 막간을 이용해 밴드 멤버를 붙잡고 다짜고짜 물었다 “클라리넷으로 성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쬐그만 녀석이 당차게 묻자 누군가가 성공하려면 무조건 서울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소년은 그때 결심했다. 여름방학, 소년은 학교의 악기창고를 털어 클라리넷을 훔쳐 상경했다.
그가 한국대중음악의 밴드와 포크 1세대 이형기(62ㆍ사진 왼쪽)다. 서유석이 불러 히트한 ‘황소걸음’, 세모와 네모가 부른 ‘안개비’를 작사ㆍ작곡한 주인공. 그의 본명은 이병형, 밴드로 활동할 때는 이병기, 솔로 앨범은 이형기란 이름으로 냈다.
그가 무려 37년만에 다음달 정규앨범으로 돌아온다. 1977년3월에 나온 솔로 첫 앨범 ‘머물래’를 내놓고 잠시 활동하다 잠적했던 그가 바람처럼 돌아와 얼굴을 내민 것이다. 앨범에는 키보디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아들 이환(34)이 참여했다.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이야기는 좀 길어진다. 그의 첫 터전은 서울이 아닌 인천이었다.까까머리에서 어느덧 더벅머리가 된 소년은 인천 씨멘스 클럽 무대에서 클라리넷을 불었다. 앳된 소년은 전세계를 떠도는 뱃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마담은 소년의 연주가 끝나면 모자를 들고 한바퀴 돌며 팁을 거둬줬다.
그 때 처지가 비슷한 또 한명의 가출 중학생과 조우한다. 그가 사랑과 평화 전멤버 최이철이다. 둘은 의기투합했다. 또래들을 모아 밴드를 결성했다. 5인조 밴드 아이돌스(최이철, 이병기, 김태흥, 허돌, 김병무)는 그렇게 태어났다. 이 무서운 10대들의 신들린 연주는 선배 가수와 밴드들에게 금세 입소문이 났다. 미8군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다. 아이돌스는 1967년부터 5년 가까이 임진각에서 부산까지 군부대를 돌며 연주활동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들의 레퍼토리는 빌보드 차트 24위에 드는 곡들이었다. 아이돌스의 음반은 세계 희귀명반에 올라있기도 하다.
환갑을 훌쩍 넘겨 그는 왜 가요계에 돌아왔을까.
아들 이환은 “아버지가 늘상 때가 되면 앨범을 내시겠다고 말씀을 해오셨다”며, “과거에 써놓은 곡들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 이병형씨는 “이번 앨범은 새로운 노년을 알리즌 시작이자 음악하는 친구들과의 재회”라고 했다.
이번 앨범은 예기치 않게 헌정앨범 성격이 돼버렸다. 아버지와 아들의 음악친구들이 소식을 듣고 참여했다. 최이철, 이중산 최효남 등 ‘전설들’이 기타리스트로, 이환의 밴드 멤버들이 세션맨으로 나섰다. 녹음실도 거저 내줬다. 아버지는 “나이 들어서도 음악을 한다는 걸 좋게 본 것 같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종종 연주여행을 떠난다. 제주도에서 12년째 운영하고 있는 무인 카페 ‘오월의 꽃’ 무대에도 가끔 아버지는 색소폰을, 아들을 피아노를 치며 함께 한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각자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음악이 삶의 전부였던 아버지는 70년대말 돌연 음악을 놓았다.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손가락을 다치는 사고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내는게 좋았다.
25년동안 그는 관련 일로 이곳 저곳을 떠돌다 12년전, 제주도에 정착해 무인카페 ‘오월의 꽃’을 차렸다. 지금은 유명 관광코스가 된 이곳은 그야말로 커피를 마시고 돈이 없으면 그냥 나와도 붙잡는 이가 없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 체르니 40을 후딱 뗐다, 내림이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 밖으로 나돌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소위 ‘문제아’처럼 살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던 아버지는 ‘너 하고 싶은 거 하라’며 야단 한번 치지 않았다.그러다 21살때 키보드를 잡았다. ‘천년동안도’, ‘에반스’ 등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다가 이중산 밴드, 시나위, 배철수 음악캠프 공연 등을 거치면서 활동폭이 넓어졌다.
이환은 들국화밴드의 마지막 1년을 같이했고 현재 전인권밴드와 최근 컴백한 신조음계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신조음계가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반면, 전인권 밴드는 좀 색깔이 깊다. 조성모 밴드에서도 뛰고 있고 친구들과 함께 꾸린 밴드가 하나 더 있다. 아버지는 아들 세대의 요즘 음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요즘 음악은 깨끗한 음악이 드물다”고 말한다. 그는 아들이 잘하는게 뭔지 알고 있다. 뱃속에서부터 램지 루이스, 밥 제임스 같은 재즈 명곡들을 들려주며 키운 아들은 몸에 리듬감이 배어있다. 여러 밴드활동을 하고 있지만 종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편한 음악으로 돌아올 거라 여긴다.
아버지는 “음악은 한마디로 들국화”라고 했다. “소리는 올림픽이 돼서는 안돼요, 경쟁하는게 아니에요. 테크닉이 좋다고 해서 최고의 음악은 아니죠. 다 개성이 있고 내면의 소리가 있어요. 박수 받을려고 하는게 아니라 영혼의 소리로 따뜻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죠.”
60대의 아버지에게는 여러가지 꿈이 있다. 음반을 내고 올 연말까지 전국 연주여행을 떠날 참이다. 대전, 함평, 주문진 등 대략 30여곳이다. 그렇다고 밴드를 끌고 다니는 게 아니다. 그 지역 음악친구들을 불러다 함께 연주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수십년 쌓아온 인테리어 실력을 발휘해 친구들의 삶의 공간들을 바꿔줄 참이다. 또 내년 봄에는 제주자연 두부전문점을 제주도에 연다. 제주도산 콩으로 만든 두부전문점이다. 그는 두부자체만으로 고소하고 부드럽고 맛있는 두부만들기에 5년을 기울였다. 이환은 아버지의 두부맛은 어디에서 찾을 수 없다고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두부전문점 체인은 그의 꿈의 중간단계일 뿐이다. 종착역은 서울 근교에 음악인들을 위한 진정한 라이브카페를 만드는 것이다. 실력있는 하우스밴드가 상근하는 카페, 연주자와 음악팬들이 모두 좋은 음악을 통해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번 앨범은 그런 거창한 프로젝트의 첫 걸음이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요즘 ‘큰손’들은 주식 팔지도 사지도 않는다…‘11월 3일’부터 본다, 왜? [큰손 따라잡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7/news-p.v1.20260826.97fcdbca4f2c4562acc488b50990cb2d_T1.jpg?type=h&h=240)

![못 믿을 AI기업…검증하고 평가받게 하라[머브 히콕]](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7/news-p.v1.20260823.2391f1fe070840f39f8da5e471902ef7_T1.pn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