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발연기의 시작”이었던 황정음(29)이 40부작 주말극 ‘끝없는 사랑’(SBS)의 여주인공을 맡아 긴 달리기를 끝냈다. 지칠 법도 하지만 역시나 유쾌했다. 지난 28일 늦은 오후 만난 황정음은 37부로 조기종영을 맞은 드라마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찝찝함이 크다”지만, 스스로 “기특하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한다.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황정음 인터뷰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2002년 걸그룹 슈가로 데뷔해 적지 않은 작품을 거치는 동안 황정음 스스로의 고백처럼 연기력 논란이 따라다녔다. 인기 멤버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걸그룹 슈가의 일원으로 연예계라는 정글에 뛰어든 황정음은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 한창 주가 상승 중이던 인기그룹 SG워너비의 김용준과의 실제 연애사를 공개하며 처음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황정음의 이름 석 자 앞엔 ‘김용준 여자친구’라는 수사도 따라다녔다. 2005년 ‘루루공주’는 황정음의 연기 데뷔작이었다. 그 뒤로 몇 편의 드라마를 했지만, 참혹한 수준의 연기를 보여줬다. ‘걸그룹 출신’ 연기자의 ‘연기력 논란’이라는 주홍글씨가 내내 따라다녔다.‘발연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돈의 화신’을 만나기 전까진 “연기 자체가 무서운 존재였다”며 “내연기를 못할 때의 촬영장의 공기가 너무 끔찍하다”고 황정음은 말한다. “할 수 있는게 없어” 시작한 연기생활이라지만, 한 해에 한 편씩 지난 10년간 치열하게 드라마를 해왔다. “다작이 연기의 힘”이라 할 만큼 내공이 쌓였다. 이쯤하면 연기가 늘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 지난해 KBS2 미니시리즈 ‘비밀’을 만나며 황정음의 연기인생이 활짝 피었다. 한 남자에게 버림받은 처절한 여자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연기하자 그 해 K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가져갔다. ‘황정음의 재발견’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연기로 칭찬받은 것도 연기가 재밌다고 느꼈던 것도, 연기를 하며 조금 더 겸손하고 좋은 사람이 된 것”도 ‘비밀’을 만나면서였다. “발연기 시절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차기작 선택이 의외였다. 나연숙 작가의 ‘끝없는 사랑’에서황정음은 출생의 비밀을 안은 서인애를 만났다. 엄마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품은 채 성장해 법대에 입학하고, 여배우로 데뷔하고, 인권변호사를 거쳐 법무장관까지 오르는 “피곤한 삶”을 경험했다. 격동의 현대사가 서인애의 삶을 통해 그려져야 하는 드라마였다.
“‘비밀’ 이후 방송3사 미니시리즈 대본이 다 들어왔어요. 그 수많은 드라마를 고사한 선택이었죠. 자만했어요. 다른 건 시시해서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비밀’ 만큼 센 작품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애초 캐스팅 0순위였지만, 황정음이 한 차례 고사하자 다른 여배우의 손도 탔다. 모두가 흔쾌히 수락하지 못한 어려운 역할이었다. “다른 사람이 못 하겠다고 하니 그럼 내가 하지 뭐”라는 ‘욕심’이 컸다고 한다.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황정음 인터뷰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드라마 초반 황정음은 시청자를 붙들어두는 데는 성공했다. 황정음의 강점인 눈물연기를 보며 “물이 올랐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적어도 ‘골든타임’ 시절 잔뜩 힘이 들어가 연기를 하던 모습에 비한다면, 연기를 대하는 태도는 한결 편안해졌다.
다만 드라마는 연기, 연출, 대본의 세 축이 조화롭지 못했다. 이미 중반에 들어서며 스토리는 힘이 빠졌고, 아무리 시대극이라지만 2014년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한 ‘끝없는 사랑’은 대중과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
“다시 갈 길을 잃은 것 같아요. 하지만 얻은게 많아요. 연기는 혼자 하는게 아니라는 것도, 한 작품 안에선 각자의 역할에 맞게 해줘야 하는 크기가 있는데 그게 어그러지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어요. 촬영하는 동안엔 당시의 환경이 힘들었는데 제가 부족하고 못나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며 스스로 ‘욕심쟁이’라고 말하는 황정음이지만 이번 드라마에선 욕심도 버렸다고 한다. “조화를 이뤄야 하는 작업”에서 “어느 누가 더 돋보이려 할 때 호흡이 깨진다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황정음 인터뷰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긴 호흡으로 이어온 드라마를 작품성과 화제성은 별개로 무리없이 마친 지금 황정음은 다시 ‘긍정의 아이콘’으로 돌아왔다. 긴 연예계에 시절을 버텨온 힘이었다. 수많은 논란이 따라오고 다시 주저앉아야 할 때도 “차 안에서 한바탕 실컷 웃고 잊어버리는” 의연함과 “잘 됐을 때 역시 난 잘 할 줄 알았어”라는 자신감을 품을 수 있는 당당함이 ‘멘탈갑’이라는 황정음의 순수함이 엿보여 ‘피식’ 웃음이 난다.
“저 욕망의 화신이에요. 한 번 태어난 인생 정점을 찍어야 해요. 내가 못할 거라 생각해서 안 하는 건 바보같은 짓이에요. 경험을 해서 얻는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이제 본 게임이죠. 되게 재밌을 것 같아요.”
/shee@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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