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수, 관습적 중국 학계에 도전장

‘중국 민족’ 개념 애초 존재하지 않아

역사적 조건 속 발명된 구성물로 해석

중국정치사상 역시 시대의 산물…

공자의 예치, 신정정치의 대안으로 등장

제국의 도학, 이상적 공화국 비전 공유

중국을 알면 한국을 잘 이해할 수 있어

“공적인 수사, 역사서술법, 그리고 다양한 이데올로기 생산수단을 통해 중국 정체성을 발명하고, 재발명하고, 강화하고자 하는 지속적인 인간 노력이 결과 외에 중국을 지탱하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기초 같은 것은 없다.”(‘중국정ㅇ치사상사’에서)
“공적인 수사, 역사서술법, 그리고 다양한 이데올로기 생산수단을 통해 중국 정체성을 발명하고, 재발명하고, 강화하고자 하는 지속적인 인간 노력이 결과 외에 중국을 지탱하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기초 같은 것은 없다.”(‘중국정ㅇ치사상사’에서)

‘중국의 정치사상에 대한 야심적이면서도 정교한 연구’(존 닐슨 라이트 케임브리지대 교수), ‘철학적인 예리함과 역사적 맥락이 최적의 균형을 이루는 중국정치사상사’(리 젠코 런던정경대 교수).

김영민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가 지난 2017년 영국 폴리티 출판사 의뢰로 펴낸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중국정치사상사)’에 대한 학계의 평가다. 당시 이 책은 중국 정치학자 샤오궁취안의 ‘중국정치사상사’ 이후 40년 동안 정체된 학문적 공백을 메운 성취로 호평을 받았다.

김 교수가 이 영문 저서를 저본으로 우리 실정에 맞게 새롭게 구성한 ‘중국정치사상사’(사회평론아카데미)를 펴냈다.

900쪽을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은 샤오궁취안을 비롯, 대부분의 중국정치사상사가 채택한 연대기적으로 사상가를 나열·해설하는 형태를 따르지 않고, 샤오궁취안과 다른 통사들이 기반하고 있는 전제에도 입장을 달리한다.

즉 중국의 역사를 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하나의 연속체로 보는 중국 민족주의 역사관, 중국을 강력한 전제국가로 규정하고, 유교를 중국정치사상의 전형적 형태로 보는 ‘샤오궁취안식’ 표준에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중국 민족’이란 개념은 과거에는 없던 것으로, 현대의 관점을 전근대 이전까지 투사한 목적론적 입장이라며, 중국은 원래부터 존재해온 단일한 덩어리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책은 현재의 눈으로 과거의 정치사상을 구조화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정치사상을 읽어내는 입장을 취한다. 즉 실제 역사와 부합한 서사를 써내려가는데, 그 중심을 가로지르는 것은 ‘중국, 중국성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이다.

저자는 중국성을 사회계통적 입장에서 찾아간다. 중국성이라는 본질이 있는 게 아니라 각 시대마다 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사람들이 집단적 동일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속적으로 강화된 성질도 있고, 한 때는 중국성으로 여겨진 것이 어느 시기에는 시대와 보조를 맞추지 못해 사라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중국성이란 변화하는 조건에 반응하는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책은 공자로부터 중국정치사상사를 서술해나가는데, 공자의 예치(禮治)를 사회 역사적 맥락 위에서 파악한다. 공자는 종래 천명과 귀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 신정정치의 정당성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새로운 정치질서가 요구되던 시기에 인간세계 안에서 대안을 찾았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보다는 세속 정치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해지면서, 신정정치에서 계몽된 관습 공동체로의 전환이 이뤄진다.

예가 다스리는 정치 공동체라는 공자의 사상은 후대 제국 왕조로 전승된다. 공자가 생각한 계몽된 관습 공동체는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와 한정된 집단을 상정했으나 제국의 황제들은 지도층에 국한하지 않고 보다 넓은 지역과 보다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도록 했다. 확장된 제국을 다스리는데 법만으론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공자의 노력에도 사회혼란이 가중되자 정치사상가들은 예치 대신 무력과 형벌 등 다른 형태의 정치적 삶을 사색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묵자는 예의 수행이 진정한 도덕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신민을 다스릴 권위를 군주에게 부여했다.

저자는 제후국을 통일한 진에 이어 한, 당, 명, 청으로 이어지는 제국의 특징을 살피면서, 특히 지난 1000년간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사상 사조인 도학(道學)에 주목한다. 흔히 도학을 전제국가를 위한 이데올로기, 정체된 사회와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보는 데 반대 입장을 취한다. 도학이 황제의 권위를 일견 받아들였지만 형이상학적 공화국 비전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즉 본성의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도학의 이념은 무엇보다 중앙 정계에 진출하지 않은 지방의 엘리트들에게 왜소한 느낌을 벗어나게 해줬다. 뿐 만아니라 구성원들이 상호 동등하게 연결돼 있고 자신이 귀속된 사회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공동체, 형이상학적 공화국이란 비전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저자는 송나라때 문인으로 유명한 소식을 사상사적 맥락에서 재조명한다. 소식의 대표작인 ‘적벽부’도 유배문학이 아닌 소식의 정치사상을 구현한 텍스트로 읽어낸다.

또한 청나라 옹정제가 페르시안 무사, 튀르크계 왕자, 도가의 술사, 티베트 승려, 심지어 유럽인 복장의 다양한 초상화를 남긴 점을 들어, 다양한 문화적 틀 속에서 제국을 통치한 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도 추적해나간다.

책은 기원전 6세기부터 현재까지 방대한 중국정치사상사를 새로운 서사로 써내려간다. 연대기순으로 구성하되 계몽된 관습공동체, 국가, 형이상학 공화국, 독재, 시민사회, 제국 등 정치체제로 배열, 각 시기를 관통하는 사상이 어떻게 출현하게 됐는지 그 정치적 사유의 진화과정을 면밀히 살핀다.

저자는 “중국을 이해하는 일은 한국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필요조건이라 여겼다”며, “중국정치사상의 역사는 중국문화의 본질이 전개된 과정이 아니라 변화하는 외부환경의 제약과 기회에 대한 일련의 창의적인 반응이 누적된 전통”임을 강조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중국정치사상사/김영민 지음/사회평론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