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현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팀 부장
투자의 관점 설정이 중요
가치주의 '가격'아닌 '가치'에 주목
현 조정은 급격한 상승에 따른 정상화
지난해 말 1%를 밑돌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최근 1.5%를 넘어서며 빠르게 상승하자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도 같이 확대되고 있다. 돈의 가격인 금리가 상승하니 시장 참여자들이 대형 성장주의 높은 밸류에이션을 불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시장 분위기는 지난해 디플레를 우려하던 시장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각 국 중앙은행들은 유례 없는 규모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며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8월 FOMC에서는 연준 위원들이 ‘평균 물가안정 목표제 (Average Inflation Targeting)’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자산 가격 상승보다 미국 경제가 성장 경로를 회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했다.
시장은 환호했고, 투자자들의 환희는 시장의 과열로 이어졌다. 그리고 인류는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부양책으로 경기 회복 기대도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사실 최근 금리 상승의 주된 배경은 기대 인플레이션의 상승이다. 국제유가 (WTI 기준)가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인 배럴당 70달러 수준까지 올라왔고, 구리 선물 가격은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물가가 오른 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 주체들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수요가 증가하면 기업 활동은 더 활발해 질 것이고, 기업의 수익성 확대로 이어진다. 이는 당연히 주식시장에 호재다. 그러나 최근의 물가 상승 압력은 오히려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필자는 최근의 변동성 장세 배경에는 시장의 두 가지 불안감이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연준을 비롯한 중앙은행들의 정책 선회가 빨리 나타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시장을 흔들고 있다. 지난해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 원자재, 부동산, 심지어 비트코인까지 모든 자산 가격의 가장 큰 상승 동인은 풍부한 유동성이었다. 세상에 돈의 양이 늘어나니 돈의 가치가 하락하고, 돈으로 표시되는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돈의 양이 늘어나는 ‘완화’의 세상에 있던 투자자들에게, ‘긴축’이라는 세상은 너무 잔혹하게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긴축’의 세상에 들어가기 전에 투자자들은 자산을 팔고 싶어하는 것 같다.
두 번째 불안감은 ‘투자의 기준’에서 나온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가치보다 가격을 추종하는 투자를 즐겼다. 수익률도 괜찮았다. 지난해 바깥 세상에 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내연기관 장비가 사라지고, 전기로 작동하는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덮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제 화석연료가 아닌 태양광, 풍력이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키웠다. 더이상 마트에 가서 실물을 보지 않고 온라인으로 쇼핑을 하고, 극장을 가지 않고 영화를 보는 세상을 꿈꿨고, 그 꿈의 끝에서 세상을 지배할 기업들의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가격 상승은 또 다른 투자자들의 추종을 불렀고, 이렇게 시장에서는 모멘텀을 활용한 투자가 당연시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있다. 이제 세상에 다시 나가야 하는데, 여전히 자기 자신은 경유차를 타고, 온라인 쇼핑보다 백화점에 나가 쇼윈도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금리가 올랐다. 돈의 가격이 오르니 꿈을 먹고 성장한 주식의 가격이 비싸 보인다. 이렇게 시장의 주도주가 변했다. 물론, 전기차 시장은 커질 것이고 화석 연료의 의존도는 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기업의 가치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너무 빨리 가격 상승에 취해버렸고, 기업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가치주의 비중을 확보하지 못한 투자자들의 경우, 지금이라도 주식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대형 IT 종목을 팔고 에너지나 금융주를 사야 하는 걸까? 여기서 우리가 점검해야 할 것은 포트폴리오의 스타일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이다. 지금 가치주로 옮겨 타고 싶은 투자자들은 또 다시 가치주의 ‘가치’가 아닌 가치주의 ‘가격’에 주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자산배분 관점에서 지금과 같은 리플레이션 국면에 경기민감주 또는 가치주의 비중을 확보하는 것은 기대 수익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장의 금리 레벨이 변했다고 해서, 화석연료 산업의 미래가 갑자기 밝아질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금리가 오른다고 해서 성장해오던 산업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성장세가 꺾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의 주가 조정은 기업의 비즈니스 환경이 변한 것이 아니라 너무 비싸진 주식에 대한 불편함이 해소되는 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성장주이기 때문에 조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치보다 가격이 더 빠르게 커지면서 확대된 괴리가 다시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MSCI 미국 성장주 지수에 포함된 종목들 중 지난해 오르지 못했던 비자, 마스터카드 등 핀테크 관련 종목들은 지난 한 달 동안 MSCI 미국 가치주 보다 높은 성과를 시현했다. 반면 지난 해 4배 이상 상승한 테슬라 주가가 지난 1달 동안 30% 이상의 하락 폭을 기록한 가장 큰 이유는 어떻게 보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격이 빨리 올랐을 뿐이지 테슬라가 생산하는 전기차 산업의 성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단순히 성장주에서 가치주로 리밸런싱을 단행하는 것은 또 다른 ‘모멘텀’ 투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투자의 기준을 ‘가격’에서 ‘가치’로 옮겨, 보유하고 있는 종목 또는 산업의 밸류에이션과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평가해 옥석을 가리는 시간을 갖는 것이 현명한 투자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동안 눈 여겨 봤지만, 가격이 비싸 투자하지 못했던 자산, 산업, 종목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주식 투자를 이제 막 시작한 주린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이러한 종목을 선택하기 위한 내공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투자자라면, 뮤추얼 펀드와 같은 간접투자상품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보기에 좋은 펀드를 골라서 묻지마 투자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장기간 시장 대비 좋은 성과를 기록했고, 특히 과거에도 이러한 변곡점에서 초과 성과를 달성했던 액티브 펀드를 투자해 포트폴리오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은 투자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매우 좋은 공부 방법이다.
주가지수가 상승하는 구간에 주식을 투자해 큰 수익을 봤던 초보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하락 장에서 돈을 잃는 것이 운이 나빠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훌륭한 매니저는 하락 장에서 손실을 최소화한다. 이런 관점에서 시장의 성격이 변하고 있는 지금 같은 변곡점에 잠시 펀드 매니저의 힘을 빌려 지혜를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돈의 가격인 금리가 상승하는 지금이 ‘투자의 기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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