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취사시설,구들,토기,그릇밭침 등 함안서 확인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아라가야는 지금의 경남 서부 함안에 있었다. 대가야가 신라에 치우친 외교를 하다가 결국 먹히자 신라에 합류하지 않으면서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지혜로운 외교 구도를 유지해 갔다.
누가 점령해도 치우침이 생기니 아예 독일, 프랑스 모두 차지하지 않기로 하고 독립시킨 룩셈부르크 비슷한 느낌도 든다. 룩셈부르크가 1인당 GDP 세계 1위를 기록하는 비결은 프랑스-독일 등 북서유럽 국가들 간 통상을 중개하기 때문이다.
낀 나라, 계륵 같은 나라는 룩셈부르크, 안도라 처럼 나만의 행복을 누리기도 하지만, 때론 서럽고, 외로우며, 무시당하기도 한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전기 가야연맹은 5세기 초 고구려의 공격으로 해체되고 후기 가야연맹이 고령지역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5세기 후반에 형성되었는데, 아라가야는 후기 가야연맹체의 구성원이 되어 남서부지역의 중심세력으로 자리잡았다.
522년 대가야가 신라와 결혼동맹을 맺은 이후 신라에 굴욕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529년 탁기탄(밀양)을 신라에 침공당해 빼앗기자, 가야 남부지역의 여러 세력들은 대가야를 불신하고 아라가야를 중심으로 자구책을 도모하게 된다. 이때 아라가야는 백제·신라·왜(倭)의 사신을 초빙해 국제회의를 여는 등 세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남부 대통합의 움직임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가야 남부제국은 신라와 백제의 영향권에 각각 편입되어 분열되어 갔는데, 남동부지역의 가야제국이 신라에 병합된 반면 아라가야를 비롯한 남서부지역의 가야제국은 자립성을 보유한 채 백제의 영향권에 포섭되었다고 한다.
아라가야의 중심이던 함안에서 왕궁 사람들을 먹여살린 대형 부엌과 토기 등이 발굴됐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에 있는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사적: 함안 가야리 유적)’ 발굴조사에서 취사전용 건물지를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에 확인된 건물지는 경사진 기반암을 길이 11m, 남아있는 너비 5m, 깊이 80cm 정도로 파내어 건물을 만들기 위한 부지를 조성한 후 그 내부에 길이 8m, 남은 너비 3.5m, 남은 높이 15cm의 내벽을 설치, 취사 공간을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3년 가까운 발굴조사결과, 건물지 내부는 황갈색 점질토를 1~2㎝ 두께로 다지고 불다짐(흙에 열을 가해 단단하게 만드는 것)으로 바닥을 조성하였으며, 내벽과 연접하여 동서 길이 5m가량 직선형으로 비교적 큰 규모의 취사시설을 뒀다.
동쪽에는 아궁이를 두었으며, 아궁이와 서쪽 배연부 사이에는 구들을 설치하였는데, 아궁이는 하단부만 남아있어 정확한 규모와 형태는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구들은 최대 길이 약 1m, 높이 약 50cm의 평평한 돌(판석, 板石)을 세우고 그 외부에 회색 점질토를 발라 연기가 외부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했다.
구들 상부는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구조는 파악할 수 없으나 구들 내부에서 일부 판석재들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측벽과 같은 방법으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연부는 깬돌을 가로로 눕혀쌓기하여 만들었으며, 연기가 잘 빠질 수 있도록 계단식으로 만들어 높이차를 두었다.
취사시설 부지 외곽에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구멍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취사 공간 전체를 보호하기 위한 외벽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배연부와 가까운 곳에서는 기반암을 원형으로 판 구덩이(집수정, 集水井)가 확인되었는데, 취사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기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
건물지 내부에서는 6세기에 볼 수 있는 원통모양그릇받침(통형기대, 筒形器臺)과 적갈색 계통의 취사용 토기류가 출토됐다. 특히, 원통모양그릇받침의 경우 물결무늬(파상문, 波狀紋) 장식, 원형 투창 등 가야토기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속성들이 관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아라가야 속성인 곡옥(둥근 옥) 또는 새 모양 투창(透窓:토기에 뚫린 구멍)이 확인되고, 소가야 속성인 점줄무늬(점렬문, 點列紋) 장식과 한 쌍의 사각모양(長方形, 장방형) 투창도 함께 확인된다. 이러한 특징은 아라가야와 다른 가야세력의 교류와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친신라세력, 친백제세력 누구도 조명하지 않으려 했던 가야 유적(전북무주~전남구례~경남김해) 발굴은 그 나라가 멸망한지 1400년이 지난 지금에야 진행되고 있으므로, 베일에 가려진 것들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4국시대 만 거론되지만 6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경기동부, 강원동부+경북동부, 경북북부, 전남 중서부, 전북남부 등에 독립국가들이 있었다. 이웃끼리 잘 지내자고 해놓고 뒷통수 잘 치는 세력이 승리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역사들이 사장된 점은 안타깝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https://youtu.be/Gza5c2uf6fs)를 통해 10일 오후 2시에 발굴조사 성과를 동영상으로 공개하여 국민과 언론의 궁금증에 실시간 댓글로 답변하는 온라인 발굴조사 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17일까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사전 신청을 받아 6월 14일부터 18일까지 1일 2조씩(1조당 4명) 발굴 현장 공개도 진행할 예정이다. 더 자세한 사항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055-211-9022)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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