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부터 이어진 시도…전통의 틀을 깬 주역들
잠비나이·무토·이날치·악단광칠·추다혜가 찾은 음악
새로운 세대의 등장…각자의 해석과 취향으로 주목
전통은 도구이자 주체…현재와의 조화가 관건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신대륙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 있다. ‘전통’이라는 단어가 주는 고정관념 탓에 다소 보수적일 거라 지레짐작했던 사람들. 전통음악을 주종목으로 삼던 음악인들이 두려움 없이 ‘새로운 땅’을 밟고 있다. 판소리는 팝(이날치)과 만났고, 활로 켜는 거문고는 EDM(무토(MUTO))과 어우러졌다. 전통음악 안에서도 난해했던 무가(巫歌)는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음악 세계(악단광칠, 추다혜차지스)를 풀어낸다. 고된 항해 속에 발견해가는 신대륙엔 장르의 구분도, 음악의 정의도 없었다. 규칙은 사라지고, 문법은 깨졌으며, 오직 ‘새로운 음악’으로 존재한다.
지금처럼 전통음악을 향한 관심이 뜨거운 적이 없었다. 지난해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수궁가’ 앨범 수록곡)가 한국 홍보 영상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진 이후 열기는 거세졌다. 전통음악엔 이전엔 없던 프레임이 씌워졌다. ‘새로운 것’, ‘힙’한 음악이라는 또 다른 틀이다. 국악인들 스스로는 “지금은 어떻게 보면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운이 좋은 시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 잠비나이부터 추다혜차지스까지…새로운 땅을 밟은 주역들=전통의 경계를 넘나든 시도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이미 1980년대부터 국악과 대중음악의 ‘긴밀한 만남’이 이어졌다. 전통음악 안에서의 시도는 진작에 싹텄다. 음악그룹 나무의 이아람(대금)은 “1990년대 안숙선, 김덕수 명인의 레드썬 프로젝트부터 푸리, 공명, 그림, 바람곶 등 많은 밴드가 본인들만의 시각으로 전통을 훌륭히 해석했다”고 말했다. 황신혜밴드, 어어부프로젝트 등 국악의 정서를 받아들인 홍대 인디신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나왔다.
2010년대에 들어서자, 전통음악의 한계를 넓힌 팀들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잠비나이, 고래야를 비롯해 다수의 팀이 등장해 전통음악에 대중음악을 접목했다. 국악기와 양악기를 혼용한 연주그룹부터 보컬의 영역을 확장한 팀들도 다수 나왔다.
이 무렵 전통음악의 변주가 주목받게 된 것은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함께 찾아온 변화다. 잠비나이 멤버 김보미(해금)는 “이전에도 타장르와의 협업은 지속적으로 시도됐다. 다만 그 방식이나 장르적 한계가 명확했다”며 “우리는 우리 세대의 방식으로 음악을 해석하고 취향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이 협업을 할지라도 경계를 지우는 방식은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또한 기존의 전통음악이라는 테두리와 시스템 안에서 평가받다 보니, 대중의 기준에선 ‘국악’으로 머무는 시도가 다수였다. 반면, 이들은 보다 과감하게 전진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갔다. 경계를 지우는 시도로 종종 ‘선구자’로 불리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경계를 밟고서든, 넘어서든 전통음악의 테두리 안에서 자생한 음악인에게 장르의 융복합은 의도가 아닌 시도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국악을 전공했지만, 대중음악의 환경에 노출된 경험은 이 무렵 등장한 음악인들이 전통을 넘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자양분이 됐다. 잠비나이의 이일우(피리, 기타, 태평소)는 “중학교 때부터 국악을 전공하고, 대학에선 록밴드를 하며 국악과 밴드음악을 겸했던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체득돼 경계를 넘나들 수 있었다”며 “돌아보면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기 보다 모든 것들이 경계 안에서 어우러졌다”고 강조했다.
전통음악의 ‘대중화’, ’재해석‘을 기치로 두고 뛰어든 팀도 있다. 정가악회의 유닛그룹으로 결성된 악단광칠이다. 악단광칠은 다른 그룹과 달리 오직 국악기와 우리 소리만으로 전통음악의 한계를 넘어 지금의 음악을 만들어간다. 이들은 국악계에서도 낯설고 생소한 두 장르를 결합했다. 보컬 홍옥은 “국악인 사이에서도 낯선 두 장르의 결합이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며 “문학적, 음악적으로 가치가 있는 장르에 강렬한 사운드를 더해 대중음악적으로 풀어낸다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도구이자 주체로…“전통과 현재의 어색하지 않은 조화”=새로움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전통음악’은 이들에게 하나의 도구이기도 하고, 주체이기도 했다.
악단광칠은 무가와 서도민요를 혼합해 대중음악을 지향하면서도 ‘한 가지’를 고수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김약대 단장(대금)은 “정가악회가 지난 10년간 전통음악을 대중화하려는 시도를 이어오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전통의 형식을 갖춘 것, 국악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었다”라며 “대중적인 사운드를 만드는 것과 대중이 대중음악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 악단광칠은 그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거문고과 프로듀서, 그래픽 아티스트가 만난 무토는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완성된 하나의 공연예술을 선보인다. 무토의 박우재(거문고)는 “전통은 소재라고 생각한다”며 “그 소재를 잘 다루는 기술자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도 예술작품으로서 차별성을 추구하는 균형을 맞추는 것에 대한 부분을 고민하며 음악적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다혜 역시 “내가 애정을 가진 전통이라는 도구를 삼아 예술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고래야의 경이(퍼커션)도 “전통음악의 정수로서 무언가를 결합하거나, 그것이 국악인지 아닌지 고민하면서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며 “다양한 장르와 음악적 표현을 하는 데에 있어 전통악기를 사용하고 전통악기가 잘할 수 있는 장단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만남을 시도하는 밴드의 음악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본질’과 ‘원형’을 지킨다는 점이다. 바람곶의 DNA를 이어 음악그룹 나무로 활동 중인 이아람은 “전통음악의 시나위 정신을 이어가려고 하고 있다”며 “전통이 가지고 있는 깊은 멋을 살리면서 또다른 차별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러면서도 현재를 살고있는 동시대 예술가의 깨어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을 늘 고민한다”고 강조했다.
고래야의 멤버 김초롱(퍼커션)은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한국의 전통 장단을 변형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이날치 멤버 이철희(드럼)도 “판소리를 해치지 않으면서 음악이 잘 어우러지도록 작업한다”고 했다. 신박서클의 박경소(가야금)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할수록 아주 기초적인 것에 의존하게 된다”며 “가야금의 뜯고 튕기는 소리, 내가 연주하는 음악에서 필요한 박자와 음정 등이다. ‘온고지신’이 먼저라는 것이 새로운 음악실험을 하는 나만의 방식이자 규칙이다”라고 말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가들은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와 실험에서 가장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은 ‘전통’의 요소라고 강조한다. 악단광칠 김약대는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선 누구보다 전통음악을 잘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시도를 하고, 경계를 넘어 음악에 차용하면 그것 나름의 차별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10여년간 새로운 시도를 이어온 잠비나이도 마찬가지다. 김보미는 “음악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 전통의 재료들이 근거 없이 사용되지 않도록 의미를 찾고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했고, 이일우는 “국악기와 국악을 현재에 어색하지 않게 녹여내는 것을 가장 큰 포인트로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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