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은 너무 춥다. 지구에서 기록한 최저 기온이 러시아 남극 보스토크 기지의 영하 89.6도이고, 심지어 남극 내륙에서 여름철 최고기온도 영하 30도 정도니 그 추위를 상상하기가 힘들다. 남극 내륙은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하늘이라 선글라스 없이는 눈이 아플 정도로 햇살이 강하다. 여름철 남극 내륙은 얼음과 파란 하늘이 끝없이 맞닿아 있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 같다. 남극의 긴 겨울밤 너울대며 춤추는 오로라를 보며 며칠 보내게 된다면 지구에 산다는 사실을 잊게 될지도 모른다.
필자는 1990년대 말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2년 동안 생활했다. 우주과학 연구자가 남극에 간 이유는 습도·대기 등 남극의 환경이 천문우주과학 관측에 최고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시 남극에 천문대를 건설한다는 것은 화성에 천문대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상상이었다. 남극 천문대는 해발 3000m 이상의 남극 내륙 고원에 세워져야 했다. 남극 고원을 향한 경로 개척이 필요했고 관측장비 수송을 위한 쇄빙선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몇 달간 세상과 단절돼 지낼 수 있는, 무모하지만 용감한 과학자가 필요했다. 1990년 말 어려운 국내 경제 상황과 걸음마 단계인 국내 우주과학 여건을 고려하면 남극 내륙은 화성만큼이나 먼 곳이었다.
필자는 약 20년 만인 2019년 남극을 다시 찾았다. 햇병아리 연구생 시절 막연히 꿈꾸던 남극 내륙 천문대의 구체적인 답사를 위한 방문이었다. 우리나라의 남극 인프라는 20년의 세월만큼이나 놀라울 정도로 커져 있었다. 남극 내륙 진출의 교두보인 장보고과학기지는 방문 연구자들에게도 큰 부족함이 없었다. 필자는 장보고과학기지부터 남극 내륙 고원까지의 경로를 개척하는 K-루트 탐사팀에 합류했다. 단 한 대의 설상차로 세종과학기지 인근을 탐사하던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수십일 동안 남극 내륙 깊숙이 탐사할 수 있었다. K-루트 탐사대는 우주와 가장 가까운 지구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대륙이 오직 연구만을 위해 허락된 과학자들의 천국이다. 이곳에서 세계 각국 과학자들은 강한 유대감으로 협력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미국은 아문센-스콧 남극점 기지에서 1956년부터 우주탐사 연구를 하고 있다. 일본은 1957년 건설한 쇼와기지를 포함해 4개의 남극 과학기지를 운영한다. 이탈리아·프랑스는 2005년 콩코르디아기지를 건설해 뉴스페이스 우주탐사 연구를 하고 있고, 중국은 2009년 남극 내륙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쿤룬기지를 건설해 천문 관측 등의 각종 과학연구를 하고 있다.
이 나라들이 왜 남극 내륙 고원에 과학기지를 운영하고 있을까? 단언컨대 과학 영토의 확장이라 말하고 싶다. 빙하 시추부터 우주탐사까지 인류 과학발전에 공헌함과 동시에 국가의 과학역량을 높일 수 있는 곳이 남극인 것이다. 20년 전과 달리 이제는 남극 내륙 고원 천문대가 상상이 아닌 현실로 충분히 그려볼 만하다. 다른 연구 분야로 발전해온 한국천문연구원의 천문우주관측 연구와 극지연구소의 극지공학기술의 융합은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공감하고 함께하는 연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2021년 초여름 한국의 연구실에서 필자는 남극의 우주를 그려보고 있다.
정종균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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