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교육·문화에 대한 무지 한몫
자조적 사고에 갇혀 고질적 자기폄하
한국 배우려는 외국인 늘어나는데...
유학간 한국학생 한국문화 몰라 당황
문화유산 대신 정치사·이념갈등 교육
우리문화 우수성 강조하면 ‘국뽕’ 비난
한국인의 흥+집단주의 문화 상승작용
한류, 동남아→유럽·美 거치며 “상수화”
그룹 BTS의 ‘버터’가 미국 빌보도 메인 싱글 차트에서 7주 연속 1위를 차지한데 이어, 신곡 ‘퍼미션 투 댄스’가 정상에 오르면서 1위를 주고받는 신기록을 썼다. 8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대중음악사를 매일 새롭게 써가는 BTS에 이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여기에는 두 개의 시선이 있다. 하나는 한류는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는 사실이다. 방탄의 신곡이 나올 때마다 유튜브 뮤직비디오는 하루만에 1억뷰를 가볍게 넘긴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이들은 거의 다 본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한국인의 고질적인 자기폄하다. “이건 어쩌다 생긴 일이야, 여기까지야. 더 뭐가 있겠어”식의 비관적 태도다. 성취한 것을 기뻐하고 격려하고 자랑하기보다 예외적 상황으로 보고, 우수함을 낮춰 평가하거나, 한편으론 그 자리에서 밀려날까봐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크다. 한국인은 왜 그런 걸까?
40년 넘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천착해온 최준식(66)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명예교수는 식민지 교육 탓이 크지만, 무엇보다 우리 문화와 역사에 무지하고 우수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문화에 대해 한국인인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더 알려고 하지 않죠. 외국에 간 교환 학생들이 그런 말을 해요. 수업시간에 한국문화에 대해 발표하라고 하는데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에요. 전통의상을 입고 오라는데 한복이 어딨어요? 페덱스로 한복 보내달라 하고, 한복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당황하죠.”
한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K팝 영향으로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언어라는 한글의 어떤 점이 그렇게 우수한지 아는 이가 드물다. 한글창제가 세종과 집현전 학자의 공동창작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학교현장에서 그렇게 가르치기도 했다.
최 교수는 교육의 문제를 지적했다.
“국사를 가르치는데 대부분 정치사와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 연도에만 집중해요. 고려대장경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는데, 교과서엔 몽고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거라는 얘기만 나오죠. 그럼 도대체 싸움은 안하고 그걸 왜 만들었냐는 의문이 들잖아요. 왜 대단한 물건인지 자세히 설명한 게 없어요. 교과서의 근현대사는 이념갈등이 절반이에요. 근현대사는 한국사에서 아주 일부일 뿐이죠. 과거 찬란한 게 얼마나 많은데 가르치려 하지 않아요.”
-한국문화가 우수하다고 내세우면 ‘국뽕’이라고 비난을 받는다. 한국문화 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건가.
“한국문화를 말 할 때 두 가지 부류가 있어요. ‘우리 것이 최고다’는 ‘국뽕’이 있고, 사사건건 비판만 하는 사람이 있죠. 마크 피터슨이라는 한국학자는 한국사람처럼 비판적인 민족이 없다고 말해요. 조선시대 유학이라는 게 편 갈라서 싸우는 것이라고 배우죠. 일제시대에는 열등한 민족이라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세뇌시켰죠. 그러다가 해방 후 미국문화가 정신 차릴 새 없이 물밀듯 들어왔어요. 객관적으로 우리 것을 바라볼 기회가 없었던 거에요.”
-최근 인사동에서 세종때 금속활자가 발굴됐다. 우리가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인데, 서양사람들은 여전히 구텐베르크가 최초의 금속활자로 알고 있다.
“이번에 발굴된 금속활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구텐베르크보다 앞선 시기 실물 활자가 나오면 얘기가 달라지죠. 활자가 왜 중요하냐면, 활자는 책을 찍기 위한 건데, 유럽인들은 책이 있는 곳에 혁명이 있다고 했어요. 역사와 문화 발달의 증좌죠. 우리는 당연하게 알고 있는 한국문화의 우수함이 해외에 알려지지 않은 게 많아요.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손놓고 있어요. 역대 정부에서도 말로만 그랬지, 한 일이 없어요. 세종 때 집현전이나 정조 때 규장각처럼 브레인 조직을 두고 활용해야 합니다. 2015년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사상가 기 소르망이 조선의 달항아리를 보고, ‘왜 국가 브랜드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느냐’고 했어요. 국가 기관에서 민간의 브레인을 활용해야 합니다. ”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지 않았나.
“대통령이 아무 관심이 없었어요. 위원으로 처음 청와대 영빈관에 들어갔을 때, 실내 디자인을 보고 한심했습니다. 외빈들을 맞아 한국의 멋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인데, 궁궐을 모방만 했지 졸렬하기 짝이 없었어요. 그런 공간을 공들여 만들어야죠. 문화융성위원회라는 것도 문화가 무엇인지, 융성이 무엇인지 개념 정립을 먼저해야 하는데, 제 각각 자기 분야만 지원해 달라고 하니. 작심발언을 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랐죠.”
최 교수는 이 일로 한국문학번역원과 작업하기로 한 프로젝트가 취소됐다고 했다.
-한국이 최근 명실공히 선진국이 됐다.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가 조선 유교의 힘이라고 쓰신 적이 있던데.
“조선의 독특한 정치문화는 유교에서 왔어요. 유교만큼 백성 생각하는 정치가 없습니다. 외국 학자들이 그렇게 말해요. 당신들 임금 앞에서 ‘전하 아니되옵니다’, 이렇게 말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냐고. 유럽에는 역사적으로 그렇게 말한 신하가 없다는 거죠. 성리학의 윤리에 맞느냐 안맞느냐 판단해 임금도 들이받았어요. 그게 끝까지 올라가면 맹자에요. 맹자는 왕노릇 못하는 왕을 죽여도 된다고 말해요. 역성혁명이죠. 중종반정도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중국은 유교정치철학이 정착하지 못했는데 조선은 달랐습니다. 그런 저력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가 빠른 속도로 된 것이죠. 산업화도 그래요. 종교 가운데 교육을 가장 중시한 게 유교에요. 오죽하면 경전의 첫 글자가 배울 학(學)이에요.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그렇겠어요. 해방 후 최빈국인 우리나라가 일어난 것도 교육의 힘이죠. ‘배워서 남주냐’는 말이 있잖아요. 한국은 IQ가 세계 1, 2위인데 특별히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시켜서 그래요. 한류도 그런 데에 바탕이 있는 거에요. 흥만 있어서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훈련과 교육이 바탕이 된 거죠.”
-MZ세대들은 유교적 가치와 거리가 먼듯하다. 탈권위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나.
“유교문화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할 게 권위주의에요. 특히 나이를 따지고, 언니· 형 호칭을 하지 말자고 기회있을 때마다 말하는데, 형· 동생 하는 순간 서열 생기고, 권위적이 되는 거에요. 이게 지연, 학연으로 이어지면서 분열되죠. MZ세대들도 다르지 않아요. 유교문화 가운데 좋은 문화는 없어지고 나쁜 것만 남았어요. 냉장고에 있는 김 빠진 사이다 같은 거죠. 마실 수도 없고 버릴 수 도 없고. 그걸 제일 먼저 깨달은 게 기업이에요. 호칭 없애고 ‘님’으로 통일했잖아요. 돈을 벌려면 창의력이 필수인데, 그러려면 사회문화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조선은 유교의 나라에요. 오랜세월 삶의 양식이었고, 장단점이 있죠. 우리는 조선조가 망하고 통렬하게 유교문화를 분석하고 총정리해본 적이 없어요.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가 한국에 왔는데, 교수들이 줄서서 본인 연구한 걸 숙제검사 맡듯 하니까 한 말이 있어요. “내 것 연구하지 말고 불교나 유교 연구하시라고. 유교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해요.”
-‘냄비이론’으로 한류를 설명하신 게 흥미롭다.
“노래와 춤은 코리아에요. 살사도 제일 늦게 들어왔는데 가장 잘 춘다고 하죠. 스윙댄스도 그래요. 스윙댄스를 매주마다 추는 클럽이 있는데 일본에서 올 정도였어요. 냄비이론은 우선 자기나라 사람들이 좋아해야 다른나라가 좋아한다는 논리에요. 자기들이 안좋아하는데 어떻게 다른 나라가 좋아하겠어요? 흥이 흘러 넘쳐서 세계에 퍼지는 거죠.”
-한류가 상수가 됐다고 했는데, 지속가능성이 있는가?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뜨니까, 그 때 ‘금방 꺼진다’ 그랬어요. 그룹 HOT가 인기 있으니까. ‘한류는 징검다리 같아서 건너가면 안 돌아온다, 중국이 서양문화를 직접 받아들이는 것 보다 한국을 통해 동양화된 것을 받아들이는 게 맞아서 그렇다’며, 금방 사라진다고 했죠. 그런데 그 다음 한류가 동남아로 갔어요. 그랬더니 ‘못사는 사람만 좋아한다’고 해요. 그 다음 일본에서 빵 터졌죠. 그리고 이란으로 갔어요. ‘거기까지야’, 그랬다가 SM이 남미 공략하고, 유럽,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한류가 상수화됐죠. 우리는 굉장히 자조적이죠. 오히려 다른나라라면 침소봉대했을 일이죠. 오히려 그래서 K팝이 좀더 힘을 내면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몰라요. 앞으로 우수한 친구들이 또 다른형태로 나올 거라고 봅니다. 전세계적으로 춤과 노래 제일 잘하는 게 우리나라고, 한국식 집단주의 문화, ‘우리는 하나다’는 의식이 강하잖아요. 이게 다른 나라에선 안돼요. 한류는 문화복합적이에요.”
-한류가 한 발 더나아가려면?
“정치적으로는 이번이 구세대를 청산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요. 산업화·민주화를 넘어 한국적 가치, K-밸류를 키워나가야 해요. 한국 사상에서 찾아야죠. 선비 정신이라든지 친자연적 세계관, 전통종교의 휴머니즘 등 잠재적 가치들이 많아요. 갈라치기만 안하면 우리의 에너지는 굉장합니다. 중국의 젊은 세대는 한류에 경도돼 있어요. 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 생각해 봐야 합니다. 중국이 과거처럼 보복 못합니다. 반도체 등 맞장 뜰 카드가 있는데 못쓰고 있죠. 일본관계도 풀어야죠. 동생처럼 얼러야 해요. 그만한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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